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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업인에 글로벌 경영 새긴 큰 별 지다(종합)

[김우중 별세]대한민국 기업인에 글로벌 경영 새긴 큰 별 지다(종합)

등록 2019.12.10 10:10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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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투병생활 중 숙환으로 별세···향년 83세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명언···글로벌 경영 전도사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대우 ‘재계 2위’로 키워“현장 경영 강조···소탈하고 겸소한 경영인으로 기억”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명언을 남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대우그룹이 사라진지 20년 만에 자신이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주대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건강 악화로 지난 1년간 투병 생활을 해왔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은 가족들이 함께했다고 밝혔다.

83세 일기로 생을 마감한 김 전 회장은 한국의 경제 성장기인 1980년~90년대 대우그룹을 재계 2위까지 끌어올린 경제인이었다. 특히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직전까지 국내 기업인들에게 동남아, 중동 등 해외 시장 개척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글로벌 경영의 전도사’로서 재계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특히 김 전 회장이 기업인을 선망하던 학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1989년 펴낸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서점가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면서다. 김 전 회장이 강조한 ‘세계 경영’ 메시지는 2000년대 유수 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커다란 초석이 됐다.

하지만 대우그룹 해체 이후 분식회계 혐의로 해외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내몰리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상경해 경기고에 진학한 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은 1966년 들어간 한성실업이었고 이듬해 자본금 500만원을 갖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1970년 대우실업 사장에 오른 그는 대우건설, 대우전자, 대우조선, 대우증권 등을 창립하며 1974년 1억달러 수출탑을 달성하며 대우그룹의 몸집을 키워나갔다.

1982년초 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서열 4위에 그룹을 올려놨고, 그해부터 그룹이 부도를 맞고 해체되던 1999년 10월까지 18년간 회장직을 이어갔다. 대우그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1999년 말 그간의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20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30대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룹 확장 정책을 이어오던 김 전 회장은 1997년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고 유동성 위기에 빠져 41개 계열사 중 16개를 매각했으며 남은 회사들도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결국 1999년 11월 경영 포기 선언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우는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운 대표적인 회사였고, 외환위기 당시 쌍용그룹으로부터 3조4000억원의 빚더미에 쌓인 쌍용자동차를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김 전 회장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2005년 6월 입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기까지 5년8개월 간의 해외 도피 생활을 지속했다. 이어 2006년 21조원대 분식회계 및 9조원이 넘는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의 형을 확정 받았다.

2007년 12월말 대통령 특사로 사면된 이후에는 대우그룹 경영 시절 시장을 개척하며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베트남에서 남은 생을 보내왔다.

김 전 회장은 건강이 나빠져 지난해 귀국한 이후 작년 말부터 증세가 급속히 악화돼 장기 입원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2014년 대우그룹 해체 15주기를 맞아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회고록을 출간하는 등 옛 대우그룹 임직원들과 회동하는 자리를 자주 갖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공식석장에 자리한 것은 지난해 3월22일 대우 창립 51주년 행사 때였다.

대우그룹에 몸담았던 직원들은 김 전 회장이 왕성한 경영활동을 하던 당시엔 국내는 너무 좁으니 해외로 많이 나가서 세계 경영을 펼치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전 대우그룹 직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재벌의 모습이 아닌, 열심히 일하는 창업자 모습이었다”며 “셔츠 하나 갖고도 십여 년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굉장히 소탈하고 검소한 분이었다”고 술회했다.

이어 “현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이었다. 대우조선이 파업했던 1990년대 초반 무렵엔 거제 옥포조선소에 내려가서 거기서 직접 먹고 자고 하면서 노사 이슈를 해결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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