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책 실패로 민심이 떠난 것을 확인한 마당에 여당으로선 가만히 있을 수야 없는 노릇이겠지만, 여권에선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규제 완화 주장이 봇물 터지듯 쏟아내고 있다. 마치 울고 싶은데 누가 뺨이라도 때려주길 기다린 것처럼.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마에 나선 3명의 후보 의원들의 주장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이들이 주장하는 부동산 시장 해법의 내용을 들어보면 과연 문재인 정부와 궤를 같이 해온 여당의 대표 의원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송영길 의원은 생애 최초로 집을 사는 무주택자에겐 40%와 60%로 묶인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90%까지 파격적으로 풀어주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홍영표 의원은 현재 9억원인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12억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9억원에 발목 잡혀 있던 고가주택에 대한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여론의 지적에도 꿈적 않던 여당에서 공개적으로 부동산 세금 완화를 언급한 것이다. 홍 의원은 “부동산 정책은 민주당이 가장 실패한 분야다. 종부세 부과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원식 의원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주거 사다리를 제대로 놓겠다. 주택공급·대출·세제 문제에서 유능한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차원에서 특위도 구성했다. 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19일 부동산 관련 정책을 점검·보완할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번 부동산특위가 논의하는 방향은 보유세 완화와 대출 규제 완화로 요약된다. 1가구 1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보유세, 그중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집값 기준 상위 1~2%에만 부과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부동산 규제완화라면 무조건 반기만 들던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공시가격 상승이)세수 증가가 정부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본인이 이끄는 기획재정부의 기본 입장과도 배치는 발언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 선회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지금 하겠다는 것들은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시장과 여론이 꾸준히 요구해왔던 것들이다. 그때마다 이들은 한결같이 때론 당론으로 때론 정책기조 유지란 명분으로 일축됐던 것들이다.
돌변한 여당의 태도를 두고 이 정부가 25번이나 쏟아낸 대책들로 꼬일 대로 꼬인 부동산 시장을 풀어보겠다는 진심으로 받아들여 줄 이가 많지 않은 듯하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다급해진 마음에 일단 민심이라도 잡아두자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어서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은 일관성이 생명이다. 이 정부 역시 부동산정책 만큼은 피를 흘리고 나서야 두들겨 맞았음을 깨닫는 ‘둔재의 학습과정’을 되풀이해 왔다. 자못 비장하게 ‘투기와의 전쟁’에 나섰으나, 정작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제를 통해 다주택 투기에 불을 붙이는 치명적 실책을 저질렀다. 서울 부산 찍고 내륙의 지방 소도시까지 투기의 불길이 번진 지난해 7월에야 아파트 등록 임대사업을 폐지하고 특혜를 축소하는 일부 보완책을 마련했다.
주택 공급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역시 비현실적 통계에만 근거한 오판이었다. 규제 일변도의 수요 억제 정책에 사실상 ‘올인’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 뒤늦게 3기 신도시를 거쳐 실수요에 부응하는 도심 주택공급책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에 이르러서다. 급기야 지난 2월에는 이른바 ‘변창흠표 공급대책’까지 내놨지만, LH 임직원 3기 신도시 후보지 투기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그나마도 추진이 불확실해졌다.
한심한 지경에도 부동산정책 전환에 선뜻 동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정부를 두둔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실패를 거쳐 보완된 정책들은 이 정권의 무지와 무능 때문에 빚어진 국민적 고통과 눈물을 대가로 힘겹게 얻게 된 나름의 해법들인 까닭이다. 아둔한 정권이 진작에 퍼즐을 맞췄어야 할 정책조합의 틀을 이제야 구축했다고 봐야한다. 지금은 돌고 돌아 가까스로 문제풀이의 궤도에 진입한 것 같은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화가 나도 당분간은 나름의 효과를 지켜봐야 할 때라고 본다. 아예 새로운 틀을 시도한다면 단언컨대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여당이 이젠 부동산 공시가격 상승폭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에선 공공재개발·재건축 물 건너 갔으니 규제를 전면 완화해 민간재개발·재건축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여권에서 2030 실수요를 위해 주택대출을 대폭 풀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종부세 완화론도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로 정책기조 자체를 틀면 대한민국의 부동산정책은 죽도 밥도 아닌 집값 폭등 등 ‘폭망’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모로 가든 기어 가든, 시장에 일관된 정책신호를 보내는 게 가장 절실한 때다.
뉴스웨이 김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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