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통해 편법 경영권 되찾은 박성철 회장회삿돈 빼돌린 차남 박정빈까지 잇따라 징역형 선고오너가 비리에 B2C 사업 크게 흔들려 3년 연속 손실
박 회장은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과정에서 회사 지분까지 모두 내려놓고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며 ‘청렴한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0여년이 흐른 후에서야 그가 편법으로 경영권을 되찾았으며 이 과정에서 탈세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어 차남 박정빈 부회장의 횡령 혐의까지 불거졌다. 현재까지도 신원그룹은 ‘부도덕한 오너’가 운영하는 회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청렴·정직 이미지 구축했던 신원 = 박 회장은 1973년 신원통상을 창립하며 스웨터 생산·수출을 시작한 뒤 1980년대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차근차근 회사를 성장시켜왔다. 특히 1990년 사명을 신원통상에서 신원으로 바꾼 뒤 여성복 베스띠벨리와 씨(SI)·비키, 남성복 지이크 등을 론칭하고 전기회사와 골프장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는 등 회사 규모를 폭발적으로 키웠다.
신원은 20여개 국내외 계열사에서 연간 2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가 찾아온 후 무리한 사업확장 탓에 신원은 걷잡을 수 없는 경영악화에 빠졌고 1999년 초 주력계열사인 신원과 신원제이엠씨·신원유통 등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신원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부채 상환 유예와 탕감, 추가 융자 등의 혜택을 받았다. 박 회장도 ‘경영 실패를 책임진다’는 취지로 보유 중이던 신원 지분 22.64%를 모두 회사에 무상 증여하고 전문경영인으로 회사의 워크아웃 졸업을 이끌었다. 당시 박 회장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회사를 살린 ‘청렴한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도 박 회장은 신원 지분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박 회장이 편법을 통해 신원의 경영권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가족들이 지분을 보유한 페이퍼컴퍼니 ‘티앤엠커뮤니케이션즈(이하 티앤엠)’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이 과정에서 탈세와 사기 파산까지 했다는 사실이 2015년 검찰에게 포착된 것이다.
◇정부 도움으로 회사 살렸는데···편법 경영권 회복에 탈세까지 = 박 회장은 신원이 워크아웃 중이던 2001년 광고 영화 및 비디오물 제작업체 티앤엠을 설립하고, 이 회사를 통해 채권단이 내놨던 신원 주식을 사들였다. 티앤엠은 현재도 신원 지분 21.1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신원의 실질적 지주사다.
티앤엠의 주인은 박 회장의 가족들이다. 티앤엠이 처음 공시한 2006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동훈 대표가 40%의 지분을 보유했다는 내용만 나와있으나, 이 때도 박 회장의 부인인 송기정씨, 그의 아들 박정환씨, 박정빈 신원 부회장, 박정주 신원 사장이 지분을 보유한 가족회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워크아웃 졸업 이후 회사 지분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으나 가족 회사인 티앤엠을 통해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티앤엠의 주주를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박 회장이 39.2%, 송기정씨가 20.03%, 나머지는 그의 세 아들이 지분을 보유한 100% 가족회사다. 2006년과 비교하면 박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의 지분이 크게 늘었다. 티앤엠이 주주 명단을 2015년부터 공개했기 때문에 이 사이 어떤 식으로 지분 거래가 이뤄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2006년 이동훈 대표가 보유했던 지분이 사실상 박 회장의 지분이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검찰은 이 티앤엠이 페이퍼컴퍼니라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티앤엠은 창사 이래 현재까지 매출액이 발생한 적이 없는 사실상의 페이퍼컴퍼니다. 임직원 보수 지급과 이자 수익 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고 직원 수도 한자릿수를 넘어간 적이 없다. 그런 티앤엠이 신원의 지분율을 2004년 3.38% 2005년 18.43% 2012년 28.42%로 꾸준히 확대해갔다. 이 주식 매입 자금이 오너일가에게서 나왔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검찰은 티앤엠이 신원의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이 조세를 포탈했다고 봤다. 박 회장이 가족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차명으로 신원의 경영권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세금까지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 회장이 차명재산을 숨긴 채 2008년 개인파산, 2011년에는 개인회생 절차를 각각 밟아 250억원 상당의 채무를 면책 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당시 그는 300억원대 주식과 부동산을 차명으로 보유하고도 급여 외에 재산이 없다며 채권단을 속였다. 결국 박 회장은 이 같은 혐의들로 구속 기소돼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후계자 박정빈도 횡령으로 주식 투자···경영 복귀 논란 = 박 회장이 구속 기소된 2015년 신원은 박 회장의 두 아들인 박정빈 부회장과 박정주 사장 지휘 하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박정빈 부회장마저 회사 자금을 빼돌려 주식 투자를 한 혐의가 포착, 곧바로 기소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박 부회장은 2010∼2012년 신원 자금 78억원을 빼돌려 주식투자 등에 썼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확정 받았다.
박 회장 일가는 평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청렴한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었다. 신원을 다시 회생시키는 과정에서도 정직과 신뢰를 기반으로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는 평을 받았다. 때문에 국민의 세금을 받아 기업을 회생시키면서 편법으로 경영권을 되찾고, 개인 재산을 은닉하고 채무를 탕감 받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회삿돈을 빼돌려 주식 투자를 했다는 사실은 패션업계와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다.
박성철 회장, 박정빈 부회장 부자가 잇따라 구속되면서 신원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2017년 개성공단 폐쇄가 맞물리면서 타격이 더 컸다. 박 회장의 셋째 아들인 박정주 사장이 부친과 형을 대신에 신원을 이끌었으나 역부족이었다. 박 회장의 장남 박정환씨는 목사로 일하고 있어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회사가 어려움에 빠진 사이 박 회장과 박 부회장은 슬그머니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박 부회장은 형기 만기 6개월을 남긴 2018년 4월 가석방돼 두 달 만인 6월 신원에 복귀했다. 당시 박 부회장은 아직 형기가 남은 상황에서 경영에 복귀한 사실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자 그는 ‘적자 회사를 살리기 위해 무보수로 근무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형기가 끝난 11월부터 월급을 받기 시작해 또 논란이 됐다.
박성철 회장 역시 형기를 마치고 2019년 3분기 중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복귀 이후 이렇다 할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지난달 있었던 스트리트 브랜드 ‘마크엠’의 면세점 입점 계약 체결식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신원의 48주년을 맞아 ‘퀀텀 점프 원년’을 선포하며 회사 정상화를 천명했다.
신원은 잇따른 오너 리스크로 기업·소비자간거래(B2C)인 패션(브랜드사업)부문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신원의 패션부문 매출액은 2015년 2771억원에서 지난해 1615억원으로 41.7%나 감소했다. 수익성도 계속 악화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뉴스웨이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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