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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 위기 시장조성자 제도···거래소 ‘진퇴양난’

파행 위기 시장조성자 제도···거래소 ‘진퇴양난’

등록 2021.09.13 14:50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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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이행했는데···금융당국은 ‘시장교란 혐의’ 적용“가격왜곡 부작용 막아달라”···제도개선 요구 목소리↑전문가 “증시 유동성 충분···시장조성 명분 떨어진다”

파행 위기 시장조성자 제도···거래소 ‘진퇴양난’ 기사의 사진

중소형주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시장조성자 제도가 파행으로 치닫게 되면서 한국거래소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시장조성 증권사들이 ‘시장조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건 시장조성자 제도의 운영 주체인 거래소 탓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시장조성자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제도개선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거래소는 지난 7일부터 시장조성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로부터 시장조성 의무 면제 신청을 받았다. 금융감독원이 시장조성자 9개 증권사에 48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내리자 정상적인 시장조성 활동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총 14곳의 시장조성 증권사 가운데 1곳을 뺀 13곳이 시장조성 의무 면제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사들의 시장조성 면제는 금감원 제재가 확정되는 시점까지 계속된다.

시장조성자는 주식시장의 가격발견 기능과 유동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거래소와 시장조성 계약을 체결한 국내외 증권사들은 시장조성 종목(총 673개)에 대해 상시적으로 호가를 제출하고 있다. 거래가 부진한 종목에 매수·매도 가격을 촘촘하게 제시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증권거래세 면제 등 인센티브를 얻는 방식이다.

하지만 시장조성자 제도는 그간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비판이 끊이지 않아 왔다. 저유동성 종목이 아닌 고유동성 종목에 시장조성 거래가 집중되면서 일부 종목들의 가격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과도한 주문 정정·취소를 비롯해 무차입 공매도, 업틱룰 위반 등 시장조성자들의 불법 사례들이 적발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시장조성자 제도를 운영하는 거래소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애초에 거래소가 삼성전자와 셀트리온 등 고유동성 종목까지 시장조성 대상 목록에 올렸던 데다 불법 행위에 대한 감시도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거래소는 앞서 지난 9월 시장조성자를 대상으로 감리에 나섰으나 적발된 일부 위법사례는 고의가 아닌 ‘실수’였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현행 시장조성자 제도에 대한 거래소와 금융당국의 시각 차이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장조성 증권사들은 거래소와 계약한 의무 조건에 맞추기 위해 주문 가격을 지속적으로 정정·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거래소와의 계약을 이행했을 뿐인데 금융당국이 시장교란 혐의를 받게 됐다는 이야기다.

금융당국의 이번 제재를 계기로 전반적인 시장조성 제도개선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모양새다. 시장조성 계약을 맺은 증권사가 지나치게 많고, 시장조성 종목 선정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개인투자자들의 생각이다.

또 현물시장의 시장조성자가 선물·파생시장까지 개입할 수 있는 점과 유동성 공급 상한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오히려 유동성 과다공급에 따른 가격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선물·파생거래는 실제 현물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공매도 금지 첫날인 지난해 3월 16일, 시장조성자들이 코스피 시장에서 4308억원에 달하는 공매도를 쏟아낸 건 대표적인 제도 악용 사례”라며 “시장조성자 제도 전반에 대한 금융당국의 집중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조성자는 저유동성 종목에 긍정적이지만 인위적으로 시세 결정에 개입하는 부작용이 있었다”며 “10%의 순기능을 위해 90%의 역기능을 방치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시장조성제도의 순기능이 흐려진 만큼 증권사들의 시장조성 의무를 없애도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와 달리 유동성이 풍부해진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리스크 완화보다 증권사들의 이익창출 기능이 더 강하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이론적으론 시장조성을 통해 호가가 촘촘해지면 투자자들이 비싸게 사서 싸게 팔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의 시장조성제도는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거래비용만 높이는 꼴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신규투자자들의 자금이 대거 유입된 상황에서도 거래가 없다면 종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몸집이 커진 주식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는 만큼 증권사에게 시장조성 의무를 반드시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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