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최저가 수주 경쟁···산업 생태계 무너뜨려중국서 저가 공세 시 국가기간산업 흔들릴 수도“가격 중심 제조 지양, 기술·품질 등 종합 평가로”
25일 한국행정학회 포용사회연구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 및 지방계약법에 따른 철도차량 입찰제도 개선 모색’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경북 김천)의 개회사로 시작된 이번 세미나는 철도차량 산업 관련 정부 관계자와 학계 민간 전문위원 등 8명의 패널 토론으로 3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 세미나는 철도차량 공공조달 시 진행되는 2단계 입찰 방식이 국내 철도차량 산업 전반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 지 짚어보고, 이를 보완하는 종합심사평가낙찰제도의 도입을 위해 어떤 법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지 살피기 위해 마련됐다.
종합심사평가낙찰제도는 국가 및 공공기관이 공공조달형태로 발주한 철도차량 사업에서 차량 제조업체를 선정할 때 단순히 차량 가격뿐만 아니라 성능이나 품질, 사업 수행능력, 사회적 책임 등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최저가 낙찰제로 불리는 현 ‘2단계 입찰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현장에서는 철도차량이 전세계적으로 미래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국내 철도차량 시장은 기형적인 산업 구조로 인해 발전이 크게 제약돼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주요 철도 선진국과는 달리 국내 시장은 공공부문에만 의존하다보니 규모가 작고 사업도 불규칙하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이상훈 한국조달연구원 연구실장은 “국내 철도차량 산업에서 차량은 독과점, 부품은 영세업체 중심으로 공급되는 구조적 특수성 때문에 자생적 발전이 어렵다”며 “정책 당국 및 공공부문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국내 철도차량 산업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2단계 입찰 방식이 주로 거론됐다. 최저가 낙찰제라고도 불리는 이 방식은 1단계에서 차량 제조업체의 기술수준과 이행실적, 생산능력 등 가격 외 부문을 평가하지만 최저 기준만 요구하는 ‘Pass or Fail’ 형식으로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사업 역량이 부족한 업체가 가격만 평가하는 2단계 심사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안병화 한국지방재정공제회 계약사업실장은 “2단계 입찰 방식의 경우 서류와 문서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1단계에서 해당 업체의 전문성이나 제안내용 실행 능력을 검증하기는 어렵다”며 “최저가 입찰 경쟁으로 인해 철도차량 시장의 건전성은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시경 단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도 최근 서울교통공사의 노후차 교체 사업이 낙찰 업체의 생산 역량 미달로 지연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국회에서도 철도차량 구매 방식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가격 중심 입찰제가 계속 이어질 경우 중국의 저가 부품 공세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국내 철도차량 및 부품 시장은 2012년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으로 전면 개방됐지만 거꾸로 해외 시장 진출은 각국의 철도산업 보호 정책으로 가로막힌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 철도차량 산업의 체질 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입찰 참가 자격을 기술력 중심으로 강화하고 제조업체가 연구개발(R&D) 역량에 집중할 수 있는 ‘수주 단가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가 수주→순익 감소→연구개발 부진→산업 경쟁력 저하’라는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대안으로는 종합심사평가낙찰제가 대표적으로 논의됐다. 입찰 단계에서 업체의 납품 실적, 기술력, 설비, 인력 등 종합적인 기술력 평가가 이뤄져야 차후 수리나 유지보수 등 제품 생애주기에 투입되는 총 비용을 줄이고 동시에 승객 안전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훈 실장은 “종합심사평가낙찰제가 도입되기까지는 시범 사업 등을 포함해 약 3년 내외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등 유관 부처를 중심으로 한 산관학연 태스크포스(TF)가 조속히 구성돼야한다”고 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일관성 있는 법 규정도 선제적 개선 과제로 지목됐다. 현재 종합심사평가낙찰제는 지방계약법 시행령상 철도차량 산업에 적용될 수 있지만, 국가계약법 시행령에는 도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상태다. 철도차량 자체가 국가계약법상 공사가 아닌 물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박종혁 한양대 갈등문제연구소 전문위원은 “철도차량은 회계기준으로 ‘건설업회계’로 준용하여 처리 중으로 형태상 공공부문의 건설공사와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며 “철도차량도 최저가 폐해 방지를 위해 300억원 이상의 대형공사에 적용되는 종합심사평가낙찰제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뉴스웨이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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