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출신 정 대표, 사내 게시판 통해 취임인사내부 문제점 언급···조직문화·인사제도 등 변화 예고“신세계 뛰어넘는 강남 1등 점포 키워낼 것” 자신감
◇‘순혈주의’ 깨진 롯데백화점=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최근 단행한 임원인사를 통해 백화점 수장으로 신세계 출신 정준호 대표를 선임했다. 1979년 롯데쇼핑 설립 이후 외부 인사가 대표를 맡은 건 4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롯데그룹 핵심축인 유통부문은 빠르게 변화한 트렌드에 편승하지 못하고 경쟁사에 주도권을 내주며 위기에 몰렸다. 최근 몇 년간 여러차례 파격적인 인사와 조직개편, 혁신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통해 변화를 주고자 했지만 이 마저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번 인사를 통한 그룹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바로 ‘변화’다. ‘순혈주의’를 깬 만큼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벗어던지겠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부수이기도 하다.
정 대표 또한 지난 20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9분짜리 취임 인사 영상을 통해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백화점의 ‘조직문화’를 화두로 던졌다. 내부에 만연해있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정 대표는 “롯데백화점의 오늘을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생각난다”며 “조직문화는 숨 쉬는 공기와 같다. 가장 부정적인 조직문화는 상명하복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고 시키기만 하는 사람은 더 위험한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윗사람 눈치만 보고 정치적으로 행동해 후배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 지시만 하며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팀장, 점포를 쥐어짜기만 하는 본사 갑질 등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롯데는 과거의 1등에 안주해 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8년 새 굳건히 지켜오던 백화점 점포별 매출 1위 자리는 신세계 강남점(2012년 1조2000억원→2020년 2조394억원)에 내줬고, 2위로 밀린 롯데백화점 본점(2012년 1조7000억원→2020년 1조4800억원)은 오히려 역신장하며 신세계 강남점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오히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경쟁사 점포를 경계해야 하는 지경이다.
정 대표는 “10년 전 업계 1위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며 우리가 잘하는 것부터 용기 있게 다시 시작하자”고 당부했다.
◇“강남서 1등 점포 키워낼 것”=정 대표가 제시한 핵심 전략은 ▲고객만족 전략 ▲인사제도 개선 전략 ▲강남 1등 점포 전략 등 세가지다.
그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철저하게, 광적으로 고객 만족에 집중해야 하며, 고객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돼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조직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2~3년에 한 번씩 순환 근무하는 방식을 벗어나 패션, 스포츠, 인사, 기획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인사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 대표는 본점이 아닌 잠실점과 강남점을 키워낼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고급 소비의 중심인 강남에서 고객에게 인정받는 점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잠실점과 강남점의 고급화를 통해 롯데백화점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고 신세계 강남점과는 다른 고급스러움을 넘어선 세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1등 백화점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최근의 백화점 업계 흐름이 명품과 해외패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본점과 달리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모두 유치한 잠실점을 중심으로 차별화 전략을 선보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올해 해외패션 명품 매출의 증감률은 잠실점(40.3%)이 본점(31.7%)을 앞질렀다. 여기에 잠실점 인근 상권이 송파구 헬리오시티, 위례신도시, 하남신도시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확장된 것도 성장 가능 측면에서 본점을 앞선다.
더욱이 정 대표는 신세계인터내셔날 근무 당시 몽클레르, 크롬하츠, 어그 등 해외 패션 브랜드 판권을 국내로 들여오는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패션 전문가로 꼽히는 만큼 잠실점의 패외 패션 브랜드 확장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조직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전략 키워드로 A, B, C, D로 시작되는 4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유연한 사고로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며(Agility)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 미리 대비하고(Being proactive)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우리 방식으로 전문성 있게 편집하고(Creative) ▲모든 분야에서 디자인을 통해 가치를 높이자(Design is everything every where)는 것이다. 이는 그간 롯데백화점 내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것들로, 조직에 팽배해있는 안일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정 대표는 “몇 년 후 ‘나 롯데백화점 다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 것”이라며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새로운 롯데백화점을 만들어 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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