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사태로 내부통제 시스템 도마 위자금 꺼내 쓰고자 문서 위조한 정황도 이원덕 "진상 규명 위해 최대한 협조"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찰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된 우리은행 직원 A씨가 범행 과정에서 내부 문서를 위조한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우리은행 기업매각 관련 부서에서 일한 A씨는 2012년부터 6년에 걸쳐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2012년과 2015년 각 173억원과 148억원을 수표로 빼냈고, 2018년엔 293억원을 이체 방식으로 빼돌린 뒤 해당 계좌를 아예 해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경찰 조사에서 A씨는 횡령할 때마다 은행 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과 2015년에는 부동산 신탁 전문 회사에 돈을 맡기겠다고 속여 담당 부장의 결재를 받았고, 2018년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돈을 맡아 관리하기로 했다는 허위 문서로 승인을 얻었다는 전언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이란 다야니 가문과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패소함에 따라 돈을 돌려줘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드러났다. A씨가 횡령한 자금이 지난 2010년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 참여한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 측으로부터 받은 계약금(578억원)이었기 때문이다.
대금 문제로 계약이 파기되자 엔텍합을 소유한 이란 다야니 가문은 2015년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에 이자를 더한 756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또 2019년 승소 판정을 받았다. 다만 지금까진 미국의 대(對)이란 금융제재로 송금을 할 수 없는 탓에 우리은행도 돈을 별도 계좌에 보유하고 있었는데, 최근 외교부가 특별 허가를 얻어내면서 횡령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대목은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은행 측은 범행 때마다 A씨의 말만 믿고 캠코 등에 따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주도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지주의 내부통제관리위원회 역시 첫 횡령이 발생한 뒤 10년이 지나도록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자회사에 대한 내부통제 체계·운영실태를 점검하는 등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작년말까지 지주 내부통제관리위원회엔 손태승 그룹 회장과 박상용 사외이사 그리고 이원덕 행장 등이 참여해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감독당국도 엄정한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이날 17개 은행 CEO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우리은행 직원의 횡령 사건에 대해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해당 은행에 대한 검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책임 있는 관련자에 대해선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번 사태로 이 행장은 숙제를 잔뜩 떠안은 셈이 됐다. 새로운 CEO로서 은행의 내부통제 체계를 개선하고 실추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진단이 나온다. 사실 우리은행이 직원의 일탈로 도마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엔 높은 성과점수(KPI)를 받고자 소비자의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 비밀번호를 임의로 도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이와 관련 이 행장은 "소비자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 "신뢰회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행장은 지난달 29일 우리은행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새 도약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어서는 안될 사고가 발생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당사자는 물론 연관자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이 지워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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