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후보였을 당시부터 강조해온 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오면 시장 개입이 최소화되고 자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이같은 다짐은 공염불이 되는 모양새다. 최고경영자(CEO) 인사부터 금리 등 경영에 이르기까지 시장 개입이 외려 커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중순 은행권 금융지주 회장 선임권을 쥐고 있는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모았다. 이 원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이사회와 경영진의 구성·선임과 관련해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은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라임펀드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관련해서는 "지금은 급격한 시장 변동으로 당국과 금융사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당사자께서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은 술렁였다. 사실상 금융당국에서 손 회장의 연임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해석들이 난무했다. 또한 CEO 교체 시기를 앞두고 있는 금융사들에 '낙하산'이 내려오는 것 아니냐, 관치금융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 섞인 시선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 원장의 발언들은 원론적이고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럼에도 술렁일 수밖에 없는 데는 말을 한 시점과 화자의 무게감이다.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두고 있는 CEO들이 있는 금융사들 입장에선 이같은 말을 흘려듣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의 '개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금리로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수신금리를 둔 과당경쟁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이 원장은 물론 김주현 금융위원장까지 연일 당부했다. 지난달 24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은행들이 수신금리 조정을 하지 못한채 눈치만 보는 이유다. 심지어는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대출금리 추이 점검에 나선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금리산정은 은행 고유의 경영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이 마저도 금융당국의 입김이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행들의 수신금리 경쟁을 불러일으킨 건 금융당국도 한몫했다. 금융당국은 레고랜드발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자 은행들에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은행채 발행은 은행들의 핵심 자금조달 수단 중 하나다. 이에 은행들은 또 다른 자금조달 수단인 수신상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부와 정치권, 금융당국이 한데 입을 모아 은행들의 '이자장사'를 지적하며 예대금리차 공시를 통해 줄세우기를 하면서 은행들의 수신금리 인상 속도를 높인 부분도 있다. 그러면서도 은행들에게 코로나19 등 어려움을 겪는 기업 등에 대한 적극적 자금지원 역할을 기대했다.
은행 업계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난감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금지원은 해주라고 하면서 은행들의 손발은 다 묶어버렸다는 점에서다. 또 앞서는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상에만 혈안이 돼 수신금리 인상은 늑장으로 한다는 눈초리를 보냈던 것에서 지금은 수신금리 경쟁에 치중하지 말라는 상반된 요구를 하고 있어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3중고에 빠졌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해 국내 경기 역시 장미빛 미래를 그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한 차례 금융 위기가 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서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도 당연한 수순이고 적절한 개입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행보가 적절한지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정책에는 유연성도 필요하지만 일관성도 필요하다. 엇박자로 인해 업계에 혼선을 줘서도 안된다는 지적이다.
뉴스웨이 정단비 기자
2234jung@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