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3 상용화···2년 뒤 자율주행 공공서비스도 시작자율주행 입법 성과 미흡···모호한 사고 책임 주체규제개선 속도도 느려···"다양한 지원정책 모색해야"
23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 고객 인도가 시작되는 기아 EV9에 국내 최초로 레벨3 자율주행을 지원한다. 고속도로 자율주행 기능인 'HDP'‧HighwayDriving Pilot)'는 750만원 상당의 패키지 옵션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HDP가 적용된 EV9은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 등에서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아도 80km/h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차량은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돼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로유지보조 등이 대표적으로, 사고 시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 하지만 레벨3 상용화 등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관련 법규를 손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 자율주행 카셰어링 서비스와 장애인‧순찰 자율차를 공공 서비스로 선보일 예정이다. 또 2028년엔 주차장 원격제어 서비스, 2023년엔 자율주행 택배 서비스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5년까지 레벨3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 뒤 2026년부터는 완전 자율주행(레벨4)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레벨4는 고속도로 등 특정 주행환경에서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단계다. 레벨4 단계에선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전방주시 의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문제는 아직까지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을 고려한 입법적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의 법규 위반과 교통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논의도 여전히 숙제다.
'운전자' 법적 정의 없어···안전운전 주체·방법 규정해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자동차 교통과 관련된 현행법은 운전자의 존재를 기본 전제로 구축돼 있다. 대표적으로 도로교통법은 운전자의 안전운전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운전자'에 대한 법적 정의는 빠져있다. 운전자가 없는 4단계 자율주행차에서 도로교통법의 각 조항을 준수해야 하는 주체가 모호해진다는 얘기다.
박준환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은 자율주행 시스템이 차량을 제어하는 것을 '운전'에 포함시키고 있다"며 "시스템을 운전자로 간주하거나 원격으로 자율주행차를 조종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한 명이 다수의 자율주행차를 제어할 때 운전자의 개념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운전자를 인간과 자율주행시스템으로 구분해 안전운전 의무 등을 이행할 주체나 방법을 규정해야한다는 게 박 조사관의 생각이다.
자율주행차의 교통사고 처리방안에 대해서도 입법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도로교통법에는 인명피해가 없는 교통사고에 대해 신고의무가 없고, 자율주행 사고에 대한 별도의 신고나 처리 절차 등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 연방 교통안전청(NHTSA)은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낼 경우 하루 안에 각 제조사가 NHTSA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새로운 책임법제 도입 사회적 논의 필요
특히 자율주행차의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누구에게 귀속시킬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상용화의 걸림돌로 꼽힌다. 민법상 개인이 자율주행차를 보유하며 운행할 경우 사고에 대한 1차적 손해배상 책임은 소유주에게 있다. 하지만 시스템을 임의로 개조한 사례가 아니라면 자율주행 사고에 대해 운전자의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되긴 어렵다.
완전 자율주행차의 자동차보험 가입 주체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보상기준이 비슷한 독일과 일본은 자동차 사고에 적용되던 기존 보상기준을 완전 자율주행 사고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이 같은 기준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황현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율주행 시대엔 운전자 과실에 의한 사고는 줄어들지만 시스템 관리상 하자, 시스템이나 센서 등의 결함, 통신장애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사고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 기존 책임법제를 유지할지 새로운 책임법제가 필요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재계에서도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맞는 제도 정비와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한 제도정비 속도가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에 비해 느리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보고서를 내고 자율주행 등 신사업이 불완전하고 더딘 규제개선에 발목이 잡혀있다고 지적했다. 경쟁국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율주행 시험운행이 가능하고, 자율주행센서와 인공지능(AI)기술 관련 규제도 대부분 완화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보고서에는 국내 규제환경이 수년째 제자리에 머문 탓에 현대차 등 국내업체들이 해외 시험운행에 집중하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자율주행 모드별 운전자 주의의무 완화 ▲군집 주행 관련 요건 및 예외 규정 신설 ▲통신망에 연결된 자율주행차 통신 표준 마련 ▲자율주행 시스템 보안 대책 마련 ▲자율주행차와 비자율주행차의 혼합 운행을 위한 도로구간 표시 기준을 마련 등을 제도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 한경연은 레벨4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도로와 통신 인프라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율주행용 간소면허 신설 ▲운전금지 및 결격사유 신설 ▲구조 등 변경 인증체계 마련 ▲좌석배치 등 장치기준 개정 ▲원격주차에 대비한 주차장 안전기준 마련 등이 대표적이다.
이규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자율주행차 규제 완화를 위한 네거티브 규제 도입, 자율주행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시범운행지구 확대, 자율주행 관련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지원, 기술거래 활성화 등 자율주행차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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