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배터리, 1등 K-테크 이면엔 '인력 빼가기'최근엔 AI 인재 수급 활발···삼성·SK·현대·LG 총출동"무분별한 외부 인재 수급 지양, 내부 육성 선행돼야"
이젠 그 흐름이 기술혁신 근간을 이루는 '생성형 AI'(인공지능)로 넘어가고 있다. 학계에서는 국내 AI 생태계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선, 무분별한 외부 인재 수급보다 내부 인재 교육을 통한 재배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반도체·배터리, 1등 이면엔 인재 '출혈 경쟁'
우리나라는 뛰어난 인재들이 만들어 낸 앞선 기술력으로 반도체 선도국 반열에 올랐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실제 김기남 삼성전자 SAIT(종합기술원) 회장은 지난 2월 한림대 도원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인력 문제는 한국 반도체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했고,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도 "마이크론이 우수 인재를 키워놓으면 인텔이 데려가고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력을 뽑아간다"며 인재 확보 어려움을 토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부 인력 유출을 막고자 다양한 복지 제도를 펼쳤다. 실적이 안 좋아 비용 부담이 커져도, 성과급은 상향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반도체(DS) 부문에 연봉의 50%를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지급했고, SK하이닉스는 연봉의 41% 수준까지 줬다. 또 미래 인재를 충원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 등을 도입해 박사장학생, 산학장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의 인재 쟁탈전은 '법정 공방'까지 간 끝에 SK이노베이션에 수조원대 손실을 안겼다.
배경은 이렇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11월 폭스바겐으로부터 대규모 배터리 수주를 따냈다. 세부 계약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수십억 달러 규모로 추정됐다. LG화학과 배터리 수주 경쟁에서 SK이노베이션이 승리한 것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서) 이직한 직원들을 이용해 탈취한 기술로 폭스바겐 물량을 따냈다고 의심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직원 100여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무더기 이직했는데, SK가 폭스바겐 관련 제품·기술을 다루는 직원들을 노골적으로 빼갔다는 주장이다.
LG화학은 지난 2019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관련 소송을, 미국 배터리 자회사 주소지인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까지 중재에 나섰던 양측의 법정 공방은 2021년 4월 SK이노베이션이 배상금 2조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더 나은 배터리 인재를 충원하려는 SK이노베이션의 노력이 큰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그 후에도 배터리 업계의 인재 쟁탈전은 이어지고 있다. 2021년 10월 창립한 SK온은 지난해에만 세 차례에 걸쳐 신입사원을 뽑았고, 올해 하반기에도 채용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4월 중대형전지 사업부, 소형전지 사업부 등 50여개 직무에 대한 역대급 규모의 경력사원 채용했고, LG에너지솔루션도 상품기획, 경영전략, 사업개발, 재경 등 모든 직군을 총망라 한 인재를 수급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직원들이 기업에 안착하고 조직 내에 기여도를 높이려면 높은 임금, 복지 및 기업의 평판도 등이 중요하다"면서 "또 젊은 세대는 공정성에 예민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사내 불합리함을 지적하는 블라인드 등 각종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면서 사내 문제를 파악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AI···삼성·현대·SK·LG 4대 그룹 '총력전'
최근에는 AI 업계 인력 쟁탈전이 거세다. 지난해 오픈AI가 발표한 '챗 GPT' 열풍으로 시작된 생성형 AI가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영향력을 입증한 만큼, 국내 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핵심 인력 수급에 힘쓴다.
네이버와 SK텔레콤 간 발생한 갈등이 대표 사례다. 네이버는 얼마 전 SKT에 "자사 AI 인력을 그만 빼 가라"며 내용증명을 보냈다. 정석근 전 네이버 클로바 CIC(사내독립기업) 대표가 SKT 계열사로 이직한 후 동료들을 끌어가려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게 골자다. 네이버는 소프트웨어(SW)로 성장한 기업답게 국내에서는 AI 인력을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로 알려졌다. SKT는 최근 기존의 기간통신사업자에서 'AI컴퍼니'로 도약하고자 전사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SKT는 "네이버의 오해로 생긴 일"이라며, 원만한 해결을 바란다. 그러나 네이버가 SKT 대응에 따라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은 물론 민·형사상 소송까지 검토하는 만큼, 사태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이 두 기업의 싸움은 시작일 뿐이라고 본다. 새로 떠오른 기술인 만큼,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차지하고자 하는 국내 굴지 기업의 인재 쟁탈전이 본격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SK그룹을 포함해 국내 4대 그룹인 삼성, 현대, LG의 인재 채용도 불붙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지난 20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AI·데이터 분야 경력사원 채용'을 진행한다. 이들은 조직별로 ▲생성형 언어·코드모델 개발 ▲생성형 이미지모델 개발 ▲생성형 AI 데이터 플랫폼 개발 ▲생성형 AI 검증 자동화 도구 개발 등을 담당할 인재를 찾는다.
LG는 2020년 설립된 그룹의 'AI 연구 허브'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인재를 채용한다. 직무는 ▲AI 리서치 ▲데이터 사이언스 ▲SW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비즈니스 컨설팅 등이다. 가장 적극적인 건 AI 리서치로 ▲리서치 엔지니어 ▲AI 데이터 엔지니어 등을 모집한다. 채용된 인재들은 ▲초거대 언어 모델 학습 ▲딥러닝 모델 기반 목적 대화 및 차세대 대화형 AI 기술 개발 등을 맡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 AI 연구소 '보스턴 다이내믹스 AI 인스티튜트'(Boston Dynamics AI Institute)를 앞세워 AI 인재를 수소문한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모비스 3사가 5500억원을 출자해 세운 AI 연구소를 통해 로보틱스 역량을 강화하고 로봇 기술의 범용성을 극대화하는 연구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제2의 '인건비 쇼크' 우려도···"내부서 AI 인재 키워야"
국내를 대표하는 4대 그룹이 AI 인재 채용에 경쟁적으로 나선 배경은 명확하다. 그룹사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먹거리인데, 아직 초기 시장인 터라 수요에 비해 인재 공급이 부족해서다.
김현철 한국인공지능협회장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과학기술정통부에서 대학원을 마련해 AI 석·박사를 배출하고, 학교에서도 관련 학과를 만드는 노력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그러던 도중 챗 GPT가 세상에 나왔고, 대기업들이 기술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인재를 급히 수급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AI 인력 쟁탈전이 또 한 번의 '인건비 쇼크'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비대면 솔루션을 개발하려는 기업들의 IT 인재 쟁탈전에 개발자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뛰었고, 많은 기업이 늘어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어닝쇼크'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아직 AI 분야에서는 임원급 핵심 인력에 대한 채용이 이뤄지고 있지만, 수년 전 발생한 IT 개발자 채용 대란처럼 연봉의 2배를 제시하는 등 전방위적인 인력 쟁탈전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 경우 기업들이 떠안을 인건비 쇼크도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현철 회장은 "이미 (AI 인재)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며 "결국 기존 내부 인력을 AI 인재로 재교육시켜 전환하는 것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뉴스웨이 임재덕 기자
Limjd87@newsway.co.kr
뉴스웨이 김현호 기자
jojolove7817@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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