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뜻 기린다" 故신격호 찾는 롯데 오너家'창업주 계승' 정통성 신경전···주도권 잡은 신영자 의장신동주-재단 연대 가능성···3세 승계에 악영향 우려
롯데그룹은 지난 18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추석을 맞아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추모사진을 공개했다. 신 회장은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위치한 신 명예회장 선영을 찾았다. 롯데 측은 그동안 신 회장이 연초와 명절에 신 명예회장 선영을 찾아 부친의 뜻을 기리며 참배해 왔다고 밝혔다.
이번 신 회장의 선영 방문 언론공개는 2020년 1월 신 명예회장 사망이후 처음으로, 재계는 이례적인 행보로 보고 있다. 특히 롯데그룹이 롯데재단에 대한 불편함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한다.
롯데재단은 지난해 8월 장혜선 이사장의 취임과 동시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현재 롯데장학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 이사장은 신 명예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의 장녀다. 신 창업주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장 이사장은 신 명예회장을 기리는 재단 행사들에 직접 참석하며 현장경영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디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등 1년 사이 업계 내 입지를 빠른 속도로 키우고 있다.
올해 들어 롯데재단은 신 의장과 장 이사장을 필두로 신 명예회장을 추모하고 그의 뜻을 기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재단은 지난 2월 울산의 신 창업주 선영에서 4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4월에는 서울 마포 신격호 롯데장학관에 흉상을 건립하고 5월에는 신 창업주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더 리더'를 제작했다.
지난 6일에는 롯데 전직 CEO 30여명과 롯데재단 관계자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전 원고에 대한 시상식도 열었다. 오는 10월에는 '신격호의 꿈, 함께한 발자취: 롯데 CEO들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평전을 출간한다. 책에는 롯데쇼핑, 롯데면세점, 롯데호텔, 롯데월드, 롯데케미칼, 롯데중앙연구소 등 주요 계열사 전직 CEO들이 경험한 창업주에 대한 경영 일화를 담았다.
또 창업주 울산 생가와 롯데 별장, 인근 국가 소유 부지 등에 '신격호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인근 도로명을 '신격호로(路)'나 신 창업주의 호를 따 '상전(象殿)로'로 명명해줄 것도 지자체에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롯데재단의 이러한 행보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롯데재단이 '창업주 계승' 신경전에서 주도권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측에서 재단의 행보에 '과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관계자들에게도 볼멘소리를 직접 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측은 롯데재단 측의 초대 및 제안에 모두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 회장은 롯데재단이 주도한 신 창업주 4주기 추모식에 불참했다. 대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추모식을 따로 가졌다.
롯데재단은 '신격호 일대기 뮤지컬' 공연 때도 신 회장과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을 초대했지만 두 사람은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롯데별장을 기념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에도 롯데그룹 측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롯데재단의 행보는 그룹과 별개의 일이라고 선을 그으며 창업자의 업적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활동은 대중의 반감 살 수 있다며 우려스럽다는 뜻을 밝혔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이끄는 롯데가 실적 부진을 겪는 가운데 신 의장이 신 명예회장의 경영능력을 강조하고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상황을 롯데그룹이 불편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가(家)의 전통성이 신영자 의장 측에 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신 의장과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신유열 전무의 경영승계 작업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롯데재단 측이 본격적으로 연대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신 전 부회장은 신 명예회장 기념공원 조성사업에 동의하는 등 롯데재단의 신격호 계승사업에 지원 의사를 밝힌 상태다.
롯데장학재단은 롯데지주 보통주 3.24%, 우선주 6.27%를 각각 보유한다. 보통주만 보면 신동빈(13%) 회장, 호텔롯데(11.1%), 롯데알미늄(5.1%)에 뒤이어 가장 보유수량이 많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의 경우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했기 때문에 의결권은 없지만, 임원의 선·해임이나 합병 등 특수 경우에만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편, 장선윤 호텔롯데 전무는 보유하고 있던 롯데지주 주식 801주를 지난 7월 모두 매도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유열 전무가 후계작업을 위해 신 회장과 공개 활동에 나서는 등 보폭을 넓히는 시기에 롯데 재단도 활약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유일한 롯데그룹의 승계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에 이어 신유열 전무의 발목까지 잡는 데다 아직 신 전무의 그룹 내 입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신동빈 회장을 내세워서라도 정통성 논란을 해결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조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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