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산업은 본질적으로 외주와 하청을 통해 작동한다. 대형마트, 물류센터, 이커머스 창고 등은 대부분 외부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 구조 안에서 '실질적 사용자'라는 개념은 모호하다.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장비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로 간주될 가능성은 현실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고용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없지만 교섭과 책임은 떠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상 원청은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지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그 원청에게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최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이 있을 경우에만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밝히며 기준 정비에 나선 상황이다. 그만큼 해석 여지가 넓고, 산업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노란봉투법은 고의적·불법적 쟁의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이는 파업의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기업의 방어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파업은 보호되되, 기업의 대응은 묶이는 구조라는 것이다.
유통업계는 이미 이와 유사한 상황을 경험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2021년 SPC 물류 파업과 2022년 하이트진로 화물연대 파업이 거론된다. 당시 물류 차질은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에 타격을 줬고 이후 ESG 리스크 확대, 투자 위축, 인재 유출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조 활동의 정당성은 인정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방어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다.
일부 기업은 벌써 대응에 나섰다. 외주 비중을 줄이거나 협력사와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는 곳도 있다. 노사 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이 흐름이 고용 감소, 비정규직 확대, 노동시장 경직성이라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노동권 강화를 명분으로 한 법이 일자리를 좁히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현장에서는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모든 책임을 원청에 전가하는 구조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복잡한 산업 구조 속에서 실무적인 해석과 적용 기준이 불명확할 경우 해답은 법정 다툼을 통해 '몸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과 근로자가 나눠 지게 된다.
노란봉투법은 분명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는 시대적 과제이고 입법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국회의 책무다. 그러나 그 법이 작동할 '현장'의 현실 또한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법은 어느 한편의 방패가 아니라 모두를 지탱하는 균형추여야 한다.
입법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설계의 정밀도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바꾸는가'라는 질문 앞에, 불확실성이라는 가격표가 가려져 있어선 안 된다. 이 법이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면, 그 균형과 책임의 무게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뉴스웨이 조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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