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제약업계는 한미약품의 개량신약 신화 이후 분위기가 급변하며 '개량·복합신약'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특히 규모가 작은 제약사들은 복제약과 상품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
제일약품도 의약품을 떼다 판매하는 사업으로 외형을 유지 중인데, 이 사업 구조를 정착시킨 성석제 대표 체제가 20년간 장기 집권하는 것만 봐도 '변화'에 대한 부담이 컸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품에 의존하는 구조는 수익성을 크게 높이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럼에도 회사 내부에서는 성 대표에 대한 신임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젊은 피인 오너3세 한상철 사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경영수업을 받던 한 사장은 R&D 투자를 늘렸고, 2020년엔 신약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2019년 3.46%에 불과하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은 2022년 6.78%까지 확대해 지금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제일약품의 첫 신약 탄생이라는 성과로 돌아왔고,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기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회사는 적응증 확대 및 글로벌 진출도 꾀하고 있다. 현재 자큐보는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에 대해서만 허가를 받았으나, 국내 출시 3개월만인 지난 달 위궤양 임상 3상에 성공하며 신규 적응증 추가를 위한 허가 절차에 돌입했다. 추가 적응증 심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오는 상반기 내 승인 획득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도 회사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유발 위궤양 예방요법과 관련한 적응증 추가를 준비하고 있으며, 물 없이 복용할 수 있는 구강붕해정 제형 제품도 올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엔 중국 리브존파마슈티컬그룹과 1억2750만 달러(약 17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으며 글로벌 시장 진출 기대감도 높이는 중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말 임상3상이 개시된 상태다. 상업화 시 로열티를 통한 안정적인 수익 확보도 가능하다.
아직 처방이 이뤄진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실적 개선이 본격화되고 있진 않지만 자큐보는 제일약품의 확실한 캐시카우가 됐다. 단숨에 '자체 신약'을 보유한 제약사로 위상을 높였다는 점은 업계의 모범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약개발은 실적이 탄탄한 대형 제약사들도 투자하기 어려운 분야다. 대형 제약사라고 해도 연매출 1조원이 넘는 곳이 많지 않은데, 성패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신약개발에 투자했다가 손실 규모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두려운 기업 입장에선 피하고 싶을 수 있다.
제일약품은 오너의 뚝심,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체질개선의 첫 발을 뗐다. 이 기조를 이어가려면 실패가 있더라도 R&D 투자를 계속해 과도기를 넘어서야 한다. 특히 온코닉이 넥스트 파이프라인으로 개발 중인 항암 신약은 더욱 개발이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뚝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다행인 점은 그간 제일약품이 상품 판매를 위해 구축해 놓은 영업망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소화기계 강자인 동아에스티와도 손을 잡았다. 자큐보 매출을 R&D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제일약품이 진정한 신약개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길 바란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suin@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