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 다녀온 한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행사에 다녀온 소감을 물으니, 그는 잠시 고민하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웅장하다거나 또는 대단했다는 감탄사보다 '노란 머리' 외국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말부터 전했습니다. 생각했던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말 그대로 '검은 머리'의 세상이 온 겁니다. 지난 CES 2025에서는 아시아계, 특히 한국과 중국의 약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참가 규모만 해도 그렇습니다. 올해 CES에서는 전 세계 4500여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참가했는데, 1위인 미국(1509개사)을 제외하면 2·3위는 각각 중국(1104개사)과 한국(1031개사)이 차지했습니다. 이제 반도체 세상은 아시아 국가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경쟁국은 중국입니다. 약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전 세계 반도체 1위 자리는 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고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은 조(兆)단위의 투자금을 풀며 절박하면서도 공격적인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CES 2025에서도 중국은 활발하게 자국 기술력을 내세웠습니다. 특히 최근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향상된 기술을 자랑했습니다. 게다가 올해 행사에 참가한 기업 수도 2024년(1069개사)에 비해 35개사나 늘어났습니다.
이 중 반도체 분야만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은 자국 최고의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CXMT는 설립된 지 불과 9년 만에 국내 기업들을 위협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주로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대규모 투자가 큰 몫을 했습니다.
기술력도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고 있습니다. CXMT는 최근 16나노미터 기술로 양산한 최신 제품 'DDR5'를 시장에 내놨습니다. 설립 시기만을 놓고 봐도 성장세는 물론, 국내 기업들을 향한 추격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업계에서도 CXMT와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가 이르면 2년 안에 좁혀질 것으로 분석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도 D램에서는 최고의 강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SK하이닉스가 글로벌 큰 손인 엔비디아에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오며 HBM 명가로 불리고 있고, 삼성전자도 작년 2월 업계 최초로 HBM3E 12단 제품을 개발하는 등 관련 분야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높아도 시장에서는 중국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며 경고와 조언을 앞다퉈 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상대적으로 낮은 제품 가격, 꾸준한 반도체 인재 육성 등이 향후 우리나라와 중국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풀이에서입니다.
검은 머리의 세상이 다가왔습니다. 중국의 추격이 계속되는 만큼 중국발(發) 위기론도 끊임없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언젠가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지금보다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급성장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꾸준히 우위를 점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뉴스웨이 전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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