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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바이오 애경그룹, 기업 뿌리 애경산업까지 매물로

유통·바이오 채널

애경그룹, 기업 뿌리 애경산업까지 매물로

등록 2025.04.02 16:50

수정 2025.04.02 20:15

조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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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그룹 전반에 퍼진 재정 리스크제주항공 부실 여파 나비효과그룹 정체성 결정체·캐시카우 미래 '안갯속'

애경산업 CI. 사진=애경산업 제공애경산업 CI. 사진=애경산업 제공

애경그룹이 창립 70년 만에 그룹의 뿌리인 애경산업을 매각 수순에 올렸다.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니라, 그룹의 정체성과 직결된 핵심 계열사의 매각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애경산업은 고(故) 채몽인 창업주의 사망 이후, 장영신 회장이 그룹을 재건하며 중심축으로 키워온 기업이다.

애경산업은 1954년 설립된 '애경유지공업'을 전신으로 하며, '트리오', '2080', '케라시스', '리큐' 등 생활용품 브랜드를 통해 국내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졌다. 이후 1984년 유니레버와 합작해 화장품 사업에 진출, '에이지투웨니스'와 '루나' 등의 브랜드를 앞세워 국내 3위 화장품사로 올라섰다.

2023년 기준 매출 6791억 원, 영업이익 468억 원을 기록한 애경산업은 시장 변동에 비교적 영향을 덜 받는 생활필수재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갖춘 '캐시카우'였다. 특히 유통·항공 등 다른 주력 사업들이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재무적으로 안정된 축을 유지해왔다. 이번 매각은 그룹이 그마저도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음을 드러낸다.

제주항공 부실 후폭풍···애경산업까지 매물로


애경그룹이 애경산업을 매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제주항공의 부진이다. 2005년 국내 1호 저비용항공사로 출범한 제주항공은 한때 그룹의 미래로 기대를 모았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공 수요가 붕괴된 이후 실적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9년 매출 1조3000억 원을 기록했지만, 2020년 이후 4년 연속 수천억 원대 영업손실이 이어졌고, 여기에 고환율과 고유가 부담까지 겹쳤다.

2023년 말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착륙 사고는 투자심리를 급속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룹은 제주항공을 살리기 위해 3년간 2600억 원 이상을 투입했고, 동시에 백화점 사업을 하는 AK플라자에도 16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지주사 AK홀딩스는 자회사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 차입을 확대했고, 부채비율은 2020년 233.9%에서 지난해 말 328.7%로 치솟았다.

반등 조짐 없이 주가 하락이 지속되자,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마진콜 가능성이 현실화됐고, 그룹은 결국 현금 확보가 가능한 가장 유력한 계열사인 애경산업을 매각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 제주항공 부실이 그룹 전반의 재무 리스크를 현실화시킨 셈이다.

6000억 원 확보 전망···항공·화학 중심으로 재편


애경그룹은 애경산업 매각을 통해 최대 6000억 원 안팎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매각 대상은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63.38%로, 단순 시가총액 기준 약 2400억 원이지만, 경영권 프리미엄과 자산 가치를 반영할 경우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매각 자금은 주로 차입금 상환에 투입될 예정이다. 마진콜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에서 담보 지분 유지를 위해 빠른 유동성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애경그룹은 경기도 광주 중부CC 등 비주력 자산 매각도 추진 중이다. 그룹은 재무 구조 안정화를 통해 사업 경쟁력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투자 여력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애경그룹은 항공(제주항공)과 화학(애경케미칼)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계획이다. 애경케미칼은 2021년 계열사 통합을 통해 출범했으며, 출범 초기에는 연매출 2조 원 이상, 영업이익 900억 원대의 성과를 거뒀지만 최근 글로벌 수요 위축과 중국 공급과잉의 여파로 실적이 둔화되고 있다. 항공과 화학 모두 외부 변수에 민감한 산업 구조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리스크 관리 전략이 요구된다.

변화하는 애경의 정체성



애경산업의 매각은 단순한 계열사 처분이 아니다. '애경'이라는 이름이 오랜 시간 동안 지탱해온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그룹의 정체성 그 자체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생활용품과 화장품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 기업은 단순한 실적을 넘어, 소비자 친화적 사업 전략과 브랜드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일상과 가장 밀접한 제품들을 통해 형성된 친숙한 이미지, 그 이미지 위에서 애경그룹은 신뢰를 쌓았고 외연을 넓혔다. 이후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와의 합작을 통해 화장품 시장으로도 확장하며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그룹은 더 이상 애경산업을 중심축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지 않다. 고위험 산업군을 중심에 둔 채 수년간의 출혈을 감내하며 쌓인 재무 리스크는, 안정적인 수익원까지도 손에서 놓게 만들었다. 애경산업은 그동안 그룹의 재정적 버팀목 역할을 해왔지만, 결국 현금화 가능한 자산으로 전락했다. 단순한 수익성이 아니라, 기업 정체성의 상징이 매각 테이블에 오른 것이다.

여기에는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의 흐름도 작용했다. 현재 그룹의 중심에는 2세 경영진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들은 항공과 화학 중심의 사업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소비재 브랜드 중심에서 B2B 산업군으로 무게추를 옮기는 선택은 재무 구조 재정비 측면에서 일견 타당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애경이 오랜 시간 쌓아온 소비자 기반 자산은 하나둘 정리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애경'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던 의미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브랜드가 가진 서사와 소비자와의 접점이 사라지면서, 이름만 남고 정체성은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AK홀딩스는 이날 애경산업 매각 검토설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라고 공시했다. 회사 측은 "그룹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며 "구체적인 사항이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이번 매각 검토가 단순한 자산 처분을 넘어, 향후 애경그룹의 구조와 정체성을 다시 규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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