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결된 한미약품 이사회, 이례적 경영권 분쟁10대 제약기업 회의, 99%가 원안 가결 처리사외이사 역할과 기업 투명성 강화 필요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지난해 매출 상위 10개 제약바이오 상장사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이들 기업은 지난해 평균 15.5건의 이사회와 이사회 내 위원회를 개최했다.
이사회 개최 횟수는 총 155건이었고 사외이사가 참석하지 않은 위원회를 제외한 각종 위원회 개최 횟수는 총 40건이었다. 회의에 부친 안건 수는 총 278건이었다.
278건의 안건 중 277건은 반대표 없이 가결됐다.
모든 회의를 통틀어 부결이 이뤄진 경우는 단 한 번으로, 지난해 9월 2일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북경한미 법인대표 및 등기이사 선임의 건과 한미약품 대표이사 선임의 건이 각각 부결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부결률은 0.7%에 불과했다.
당시 한미약품에서는 송영숙·임주현·신동국 등 3인 연합과 임종윤·종훈 형제 사이 벌어진 오너일가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당 이사회는 임종윤 한미약품 사내이사의 요청으로 소집됐다. 임 사내이사는 자신을 한미약품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건과 북경한미약품 동사장(이사장 의장)에 측근인 임해룡 씨를 임명하는 건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표결 결과 임종윤, 임종훈, 윤영각, 남병호 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두 건은 모두 부결됐다. 구체적으로는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박명희 사내이사가 반대표를 던졌고, 황선혜, 윤도흠, 김태윤 사외이사와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도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표를 던진 이사는 모두 3인 연합 측으로 분류된 사람들이다. 찬성표를 던진 이사는 대부분 형제 측 인물로, 애초 3인 연합 측으로 분류됐던 윤영각 사외이사만 예상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임종윤 사내이사는 첫 번째 안건이 부결된 후 이사회에서 중도 퇴장했고, 두 번째 안건도 자연스레 부결됐다. 결국 두 안건은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지난 10년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부결이 처음 나온 사례로 기록됐다.
이외에는 유한양행에서 지난해 3월 타법인 투자 관련 재논의 표결이 한 차례 이뤄졌을 뿐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의 모든 부의 안건은 만장일치 찬성으로 가결됐다.
표결 사안 대부분 통상 업무
이사·위원회가 가장 자주 열린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26건)와 셀트리온(25건)이었다. 이어서 광동제약(23건), 유한양행(20건) 순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2건의 이사회와 14건의 위원회를 소집했다. 회사는 경영위원회, 감사위원회, 보상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ESG위원회를 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두고 있다. 경영위원회를 제외한 각 위원회는 최소 2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둬 사외이사가 과반을 이루도록 구성했다. 특히 보상위원회와 ESG위원회가 모두 5건의 회의를 개최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같은 기간 셀트리온은 16건의 이사회와 9건의 위원회를 진행했다. 셀트리온은 감사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성과보수위원회, ESG위원회를 이사회 내 위원회로 두고 있다. 각 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본래 특별위원회도 있었으나 지난해 8월 14일 이사회에서 합병 추진 검토에 대한 심의를 완료하며 특별위원회는 해산됐다.
광동제약과 유한양행은 지난해 각각 20건·9건의 이사회와 3건·11건의 위원회를 열었다. 광동제약은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고, 유한양행은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 올해 3월 ESG 위원회를 신설했다.
산하 위원회가 없는 대웅제약은 이사회 9건으로 가장 낮은 개최율을 보였고, 이어서 보령(12건), GC녹십자·HK이노엔(13건) 순으로 활동이 저조했다. 역시 산하 위원회가 없는 종근당은 이사회 15건을 진행해 평균보다 낮았다.
이사·위원회 회의 개최 횟수만으로 사외이사 의결 활동의 질을 판단할 수는 없다. 부의된 안건 중 정기주주총회 소집 결의 등 통상 업무에 불과한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간혹 회의에 올라온 중요 의결 사항들도 100% 가까운 가결률을 보였다. 경영진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사외이사의 역할을 방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결 2건이 나온 한미약품과 재논의 1건이 나온 유한양행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에서는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없었다.
두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기업의 사외이사는 자신이 참석한 회의에서 1년 동안 모든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만 던졌다.
부결 2건 역시 경영권 분쟁 와중 나온 것으로 특수한 사례이고, 재논의 안건은 전원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시선이 짙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은정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는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전문성 강화는 불법 회계 관행을 개선하고, 기업 재무정보를 명확하게 해 투자자와 채권자, 고객에게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라며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과 적정한 회계 관리 관행은 ESG 환경에서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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