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사업 정리, 재정 부담 경감알짜 자산 매각 통해 현금 유동성 확보SK하이닉스 시너지 방안 모색
SK그룹이 계열사 수를 100개 이하로 줄이는 고강도 사업 재편에 들어갔다. 비핵심·부실 사업을 정리하고 계열사 간 중복 사업을 통폐합해 그룹의 외형을 줄이는 동시에 재무 부담을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확보한 자원은 인공지능(AI)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AIDC), 에너지 등 미래 성장사업에 집중한다.
사실상 그룹 성장의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자리잡고 있다. AI 메모리 수요를 바탕으로 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이어가면서 그룹 차원에서도 하이닉스의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다만 배터리·화학·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의 수익성 회복이 아직 뚜렷하지 않은 만큼 '하이닉스 원톱'에 가까워진 실적 구조를 어떻게 보완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최근 계열사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두 달 동안에만 9건의 계열사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난 7월에는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 지분 70.6%를 두산에 약 2조3000억원에 매각했다. SK이노베이션은 8월 말 적자가 누적된 배터리 분리막 업체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흡수합병했고 SK에코플랜트도 플랜트 설계·시공 전문회사 SK에코엔지니어링을 합병했다.
SK실트론처럼 경쟁력을 갖춘 자산까지 매각하고 적자 사업이나 계열사 간 중복 기능은 합병·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SK그룹이 추진해온 '리밸런싱'의 연장선이다. 2023년 말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그룹 최고 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효율화를 위한 리밸런싱이 본격화됐다.
성과는 계열사 수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2023년 말 200여개에 달했던 SK그룹 계열사는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151개까지 감소했다. 그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최종적으로 계열사 수를 100개 이하로 줄일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투자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면 이제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하고 핵심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전략의 무게중심을 옮긴 셈이다.
재무구조도 개선됐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SK그룹 합산 총차입금은 리밸런싱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2023년 말 121조5000억원에서 2025년 말 109조2000억원으로 약 12조3000억원 감소했다. 현금성 자산을 제외한 순차입금은 같은 기간 84조2000억원에서 43조100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부채비율도 145.7%에서 103.0%로 낮아졌다.
알짜 자산 매각과 계열사 합병·통폐합을 병행하면서 그룹 전체의 재무 부담을 낮추고 미래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한 것이다.
시장에서도 리밸런싱의 방향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 M&A 시장 관계자는 "수치상 재무 상황이 개선됐을 뿐 아니라 SK스페셜티·SK실트론과 같은 알짜 자산도 과감히 매각해 미래 방향성을 AI 인프라와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로 신속하게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가 계열사 수를 100개 이하까지 줄이려는 것은 단순한 재무구조 개선을 넘어 그룹의 성장축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SK그룹은 배터리·그린·바이오·디지털을 4대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공격적인 M&A와 투자를 단행했다.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수가 급증했고, 계열사 간 중복 투자와 사업 효율성 저하, 재무 부담 확대 등의 문제도 나타났다.
리밸런싱 이후에는 방향이 달라졌다.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그룹 성장의 핵심 축으로 삼고,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등 이를 뒷받침할 사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를 등에 업고 그룹 전체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만큼 그룹 차원의 자원 배분 역시 하이닉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에 맞추는 모습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서 반도체뿐 아니라 전력·에너지와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에너지로 이어지는 사업 생태계를 구축해 그룹 차원의 성장 효과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 같은 변화가 '하이닉스 원톱' 구조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호황을 타고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 그룹 전체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주요 계열사의 수익성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화학·에너지 등 주요 사업은 업황과 수익성 측면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특히 부실 사업을 계열사 간 합병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적 부진 사업의 부담이 다른 상장사로 이전될 경우 주주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다.
결국 SK그룹 입장에서는 하이닉스의 성장세를 그룹 전체의 체질 개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이닉스의 실적이 다른 계열사의 부진을 가리는 착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집중하는 전략이 AI 시대에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하이닉스에 대한 실적 의존도를 낮추면서 다른 계열사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리밸런싱의 최종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하이닉스가 벌어들이는 이익을 그룹 전체의 성장으로 연결하면서 다른 계열사에서도 안정적인 수익과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한 의미도 퇴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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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gamja@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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