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깨어나고 새싹이 움트는 새벽처럼 그렇게 송새벽은 자신을 늘 정화시키고 신선한 모습으로 유지하는 배우다. 그는 영화 ‘도리화가’(감독 이종필)에서 북을 잡았다. 그 모양새와 다룸이 능숙해 송새북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배수지)과 그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 속 퀴퀴한 도포, 틀어진 갓, 짚신을 구겨신은 송새벽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마치 조선시대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온듯 한 강렬한 인상을 안기는 것.
송새벽은 조선시대 실존 인물 김세종으로 분했다. 걸음걸이, 말투, 옷차림 등 송새벽은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김세종과 연결 지으려 했다. 실존 인물이기에 부담도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자부심이 남달랐다.
김세종은 조선 후기의 대표 명창이자 동리정사의 소리 선생이다. 송새벽은 김세종을 만나 진채선(수지 분)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하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동리정사의 살림을 꾸려가는 소리 선생 송새벽의 찰진 연기가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소리도 깨나 수준급이다. 기존 영화에서 더듬거리며 읊조리는듯 한 코믹한 대사로 그를 기억한다면 오산이다. 송새벽은 발성부터 달리했다. 목소리부터 굵어졌다. 소리는 당연히 좋다. 북을 두드리며 지르는 소리에는 힘이 있다. 게다가 단단해진 소리가 감정을 입으니 김세종 그 자체로 다가온다. 영화에 대해 말하니 송새벽은 ‘도리화가’ 촬영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1년 전을 회상했다.
“소리를 하면서 북을 치는 작업이 쉽지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1년 가까이 연습실에서 소리연습을 했어요. 사실 배역을 받고 초반에 망설였어요. 이런 작품은 최소 2,3은 연습을 하고 촬영에 들어가야 할 작품 같았죠. 연습만이 살길이라 생각했죠. 연습실에서 북을 치며 연습했어요. 연습이 끝나고 새벽까지 집에 가지 않고 연습을 한 적도 있었어요. 촬영이 다가오자 초조해지더라고요. 압박감과 불안감이 밀려오면서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북을 가져가서 연습하기도 했어요. 북에 수건을 쌓아놓고 치며 연습했어요.”
허투루 작업하는 법이 없는 송새벽이었다. 배역을 받고 가장 먼저 소리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송새벽은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부터 달랐다. 배역의 옷을 벗고 입는 방법을 아는 진짜 배우였다. 소리와 더불어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실존인물이라는 점이었다.
“김세종 선생이 최고 명창이셨고, 실존 인물이라는 점이 부담도 됐죠. 제가 역사 공부를 아무리 한다고 한들 그분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느꼈죠. 그래서 감독님과 어떻게 풀어가는게 좋을지 끊임없이 상의하며 촬영했어요. 시나리오 안에서 충실하되 김세종 선생의 몸집은 가지고 가려 했죠. 그 지점이 가장 어려웠어요.”
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하는 송새벽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매력적이었다. 김세종의 전사가 탄탄히 쌓여 소리와 감정 모두 힘이 찼다. 송새벽은 김세종이 부수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신재효(류승룡 분)는 동리정사의 수장, 김세종은 부수장이에요. 결단력과 뚝심이 있는 인물이겠죠. 쫄면서 달달거렸으면 큰 판도 올리지 않았을 거에요. 신재효와 김세종은 소위 윗분들을 알현하는 자리에서도 유쾌하게 놀았을 거에요. 칼 위에서 논다고 해서 떨지 않았을거에요. 오히려 보란듯이 해 보이는 인물들이에요. 칠성(이동휘 분)과 용복(안재홍 분) 보다 연배가 있는 인물들이니 설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송새벽은 1998년 연극 ‘피고지고피고지고’를 통해 배우로 입문했다. 무대를 아는 배우는 연기의 참맛을 알고, 그런 배우는 어느 환경에서건 연기를 잘해낸다. 극단 생활을 하며 연기를 배운 송새벽 역시 그렇다.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며 극단생활을 할 때가 많이 생각났어요. 극단 연습실에 가면 큰 밥통이 있어요. 사람이 많다보니 밥을 해서 밥도 먹고 반찬도 나눠먹었죠. ‘도리화가’ 연습을 하면서 북 위에서 밥도 먹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극단 시절 생각이 많이 생각났어요. 극단에 갓 입단했을 때 고생했던, 막내 시절도 생각났죠. 극단이라는 곳은 항상 저에게 따뜻한 존재에요. 언제가도 편안한 공간이죠.”
무대 귀한 줄 알고, 연기의 소중함을 아는 송새벽이다. 그는 연습실에서 판소리 연습을 1년간 하면서 극단 생활할 적이 많이 생각났다고 한다. 판소리와 연극은 결을 같이한다. 대중 앞에서 감정을 놀음으로 표현하기에 접근 자체가 한 가지다.
“연극과 판소리는 거의 비슷했어요. 판소리도 극이고, 연극도 무대에서 하는 극이죠. 장터와 극장, 무대가 다를 뿐이지 똑같더라고요. 단지 장르가 다를 뿐이죠. 감정을 실어 대사를 하고 제스쳐를 하는 게 비슷해요. 그런 부분이 연극적이어서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도 연극연습 하듯 주구장창 연습했어요.”
송새벽은 ‘도리화가’에서 소리꾼이 되기 위해 피땀 흘리고, 굵은 눈물도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진채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연기 새싹 시절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진채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넌지시 물으니 송새벽은 연기 걸음마를 떼던 시절, 아릿한 기억을 떠올렸다.
“신재효는 어린 채선에게 ‘마음껏 울거라. 그러다보면 언젠가 웃게 될 것이야’라고 해요. 그 장면은 제게 각별히 와닿았어요. 저도 어릴적 집에서 TV를 통해 ‘주말의 명화’를 즐겨봤지만 ‘내가 배우가 되어야지’하는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우연히 연극을 하게 되었죠. 대학생 때 잘 알고 지내던 형님들을 만나러 간 곳이 연극하는 집단이었고 그 곳에 있다보니 연극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거죠. 사실 연극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기 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재미있고 좋았어요. 함께 부대끼고 있었죠. 그런 매력을 느껴서 스무살에 극단에 입단했어요.”
송새벽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운명처럼 연극 무대에 올랐다. 이후 영화 ‘마더’, ‘방자전’, ‘시라노 연애조작단’, ‘위험한 상견례’, ‘도희야’ 등에 출연하며 연기파 배우로 자리잡았다. 쉴틈없이 달리고 있는 송새벽은 뜻밖에 초심을 꺼냈다. ‘도리화가’는 송새벽에게 처음 연기를 하고자 했던 열정을 깨워준 작품이었기에 더욱 각별하다.
“‘도리화가’를 찍으며 처음 극단에 입단해서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많이 생각났어요.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연기를 해야겠다 마음 먹었던 비장한 각오요. 제 자신에게 ‘1,2년하다 그만둘거면 시작도 하지 말아라’라고 되뇌었어요. 가방하나 메고 극단 연습실 문을 두드렸을 때 온갖 생각이 다 났지만 연극을 꼭 하고싶다는 신념이 저를 잡았죠. 그 의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것이지요. 판소리를 배우면서도 참 묘했어요. 선생님이 북을 치며 노래를 하는데 신기하고 묘했죠. 배역의 감정과 공동 작업을 통해 융화되는 매력이 공통분모 같아요. 그런 부분이 관객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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