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미래는 인재육성에 달렸다전쟁 폐허 속 섬유사업 키워 국내 1위로통신·정유 진출···오늘날 그룹 기틀 다져
최종건 창업회장은 8.15 광복 이전 SK의 전신인 선경직물에 견습기사로 처음 입사한다. 성실함으로 경영진의 눈에 띈 그는 입사 6개월 만에 조장이 돼 생산계획과 품질관리를 맡았다. 8.15 광복 직후 선경치안대를 조직, 다니던 선경직물공장을 지켰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선경직물공장을 인수하고 부품을 조립해 직기 4대를 만들고 공장을 다시 돌렸다.
직기 4대로 출발한 선경직물은 창립 12주년째인 지난 1965년 보유대수 1000대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을 차례로 설립하고 아세테이트 원사 등으로 분야를 넓혔다. 1973년에는 석유사업으로까지 진출, 선경석유까지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선경석유를 설립한지 불과 반년도 채 안돼 폐암으로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경영권을 이어받은 것은 최종현 회장이다. 최종현 회장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 분야 인재다. 최 회장은 세계적인 석학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론을 현장에 접목한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종건 창업회장이 이끌던 선경직물은 당시 잠재력은 있어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기업이었지만 최종현 회장의 리더십 아래 섬유에서 벗어나 에너지, 통신으로 사업영역을 확대, 한국 재계 5위 이내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최종현 회장은 SK그룹의 경영이념인 SKMS를 정립했고 1990년대에는 이들을 더욱 발전시킨 SUPEX(수펙스) 경영기법도 정립했다. 현재 SK그룹의 공식 최고 협의기구는 최 회장이 정립한 수펙스를 추구한다는 의미의 수펙스추구협의회다.
최종현 회장은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졌던 기업인으로도 꼽힌다. 1980년대에 정보통신 중심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 1984년부터 통신사업 진출을 10여년 간 진두지휘하며 1994년 통신사업까지 진출한다. 외환위기가 터지기 1년 전부터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견했고 폐암으로 투병 중인 상황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환율과 은행이자율에 대해 직언하기도 했다.
최종현 회장은 인재를 키우는데 주력한 사업가로도 꼽힌다. 1975년 선경연수원을 설립, 회사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가 하면 사재를 털고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며 인재를 육성했다. 장학퀴즈 후원을 40년 이상 해온 것도 나라를 위한 인재 양성 차원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학생들이 각 분야에 진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사회공헌이라 판단한 셈이다.
나라를 이끌 인재를 육성하는데 주력했던 최종현 회장의 신념을 이어받아 SK그룹은 지속적으로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지난 1998년부터 현재까지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을 맡아 약 700여명에 달하는 박사를 배출했다. 장학사업 외에도 국제학술협력 기반을 구축하는데도 주력, 아시아 7개국 17개 지역에서 아시아연구센터를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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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어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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