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법인 대타협’에 美정부도 영향?트럼프 ‘불편한 심기’에 조급한 GM“법인설립 무산 시 장기 전략에 타격”서둘러 ‘신차개발’ 등 조건 제시한 듯
산업은행이 한국GM의 연구개발(R&D)법인 설립을 지지하게 된 배경을 놓고 다양한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신설법인으로 글로벌 GM의 신차 개발을 주도하겠다는 확약이 주효했는데 여기엔 미국 정부 눈 밖에 난 GM의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GM의 신설법인 설립에 대한 산업은행과 GM의 합의가 급물살을 탄 데는 미국 현지의 상황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전날 열린 한국GM 임시 주주총회에서 법인분리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고 오는 26일 잔여 출자분 4045억원을 예정대로 집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사업보고서 검토 결과 신설법인이 지난 5월의 기본계약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기존 생산법인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이유에서다.
동시에 산업은행은 ‘주주간 분쟁해결 합의서’를 통해서도 신설법인의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았다. 그 일환으로 신설법인을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CUV)의 ‘중점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하고 이를 ‘10년간’ 유지하며 ‘추가 연구개발 물량’ 확보에도 힘쓴다는 내용까지 계약서에 담았다.
물론 GM이 계약사항을 그대로 이행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계약상 근거를 만들고 보다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 실리를 챙겼다는 점에서 산은의 이번 협상엔 소기의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은 2대 주주 앞에서 줄곧 ‘고자세’를 유지하던 GM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다. 알려진 것처럼 산은의 ‘비토권(거부권)’을 인정해준 법원 판결이 결정적이었지만 GM이 대법원 판결을 포기한 채 갑자기 몸을 낮춘 데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지 않았겠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GM을 향한 미국 정부의 ‘쓴소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사업에 집중한다는 GM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악담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무역협정으로 인해 사업부문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폈지만 사실 그의 심기를 건드린 일은 따로 있다. 바로 GM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이다. 지난달 26일 GM이 미국 내 4개 공장을 폐쇄하고 북미지역에서 최대 1만5000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 중 트럼프의 표밭인 ‘오하이오’와 ‘미시간’ 공장이 포함돼서다.
두 지역은 트럼프의 지난 대통령 선거 승리에 도움을 준 ‘러스트벨트’에 속해 있다. 따라서 이번 GM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에게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를 반영하듯 트럼프 대통령도 GM이 구조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덧붙여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가운데 중국의 친환경 정책에 맞춰 전기차를 개발한다는 GM의 행보가 트럼프 눈에는 곱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도 존재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여건이 GM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로 한국GM의 법인분할이 무산된다면 미국 정부가 이들을 더욱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2023년까지 전기차 모델 20종을 출시한다는 목표 또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에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고자 ‘10년 보장’은 물론 신설법인을 ‘중점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하는 등의 조건을 제시하면서까지 GM이 법인분할을 성사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GM의 신설법인을 둘러싼 이번 협상은 국내와 미국 현지의 정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면서 “그렇지만 산은과 계약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장담한 만큼 GM도 약속한 바를 충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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