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차관보도 ‘이피아’···기재부 1급 6명중 4명 EPB 출신참여정부·박근혜정부 이어 文 정부도 ‘이피아’ 전성시대 도래
기재부에는 크게 두개의 주요 축이 있다. ‘모피아’(재정경제부 영문 약자 MOF+마피아)와 ‘이피아’(경제기획원의 영문 약자+마피아)다. 이들은 출신부터 경쟁 관계다. 이들은 업무 성격도 조직 성향도 다르지만 한국 경제 관료의 양대 축으로 불린다. 특히 정권이 바뀔때마다 이들은 주도권을 번갈아 쥐었다.
금융과 세제가 주종목인 모피아는 위기관리 같은 현실문제 해결에 탁월하고, 예산과 기획이 특기인 이피아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비전 제시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피아가 일사불란한 성격이 강했다면 이피아는 업무 특성상 중장기적인 분석과 전망이 중요했고 자연스럽게 토론과 소통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시작으로 1급 고위공무원 6명 중 4명이 EPB 출신으로 채우면서 이피아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방기선 기재부 정책조정국장이 차관보로 임명되기 앞서 재정관리관(이승철), 기획조정실장(문성유), 예산실장(안일환) 모두 이피아 라인이다.
더욱이 대개 재경부 출신이 맡던 차관보 산하 국장 자리도 경제정책국장을 제외한 정책조정국장, 경제구조개혁국장, 장기전략국장이 모두 EPB 출신으로 채워졌다. 국장급을 제외한 고위공무원단 가운데 1차관(이호승), 국제경제관리관(김회정), 세제실장(김병규) 등만 모피아 출신으로 분류된다.
사실 이피아 전성기로 불리던 시절은 노무현 정권이다. 초반엔 김진표·이헌재 경제부총리 등 재무부 출신들이 득세하는 듯했지만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등을 거치며 이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2006년 7월 개각 이후 EPB 라인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경제팀이 꾸려졌다. 청와대에서도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김대기 경제정책비서관 등 경제기획원 출신이 한꺼번에 약진하면서 크게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는 모피아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수장은 주로 모피아 출신 관료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기재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윤증현, 박재완 전 장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임기 초반부터 금융 위기와 촛불 시위에 시달린 MB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이 절실했다. 일사불란한 팀워크와 강한 실무 능력을 갖춘 모피아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다시 흐름이 바뀌었다. 당시 기재부 장관이 부총리로 격상됐고 EPB 출신으로 정책통인 현오석 전 부총리가 경제사령탑 자리를 맡았고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내정했다. 이들은 과거 재무부에서 한솥밥을 먹던 대표적인 EPB 출신이다.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최경환 전 부총리도 관료 시절 EPB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피아 출신들을 중용하고 있지만 EPB 출신 중에서도 예산 전문가들을 발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난 정부와는 차이가 있다. 김동연 전 부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모두 주전공이 예산이다. 두사람 모두 전형적인 이피아의 행보를 보였다.
김 전 부총리는 주요 이슈에 대해 관계 장관들이 모여 자유롭게 논의하는 ‘경제현안 간담회’를 통해 부처 간 소통·협치 노력을 이어갔다. 홍 부총리 역시 사실상 ‘서별관 회의’를 부활시켰고 ‘녹실(綠室)회의’와 성격이 비슷한 비공식적인 협의채널도 가동한다. 이러한 점을 미뤄 보아 문제 해결을 위해 격의 없는 토론을 즐기는 EPB 출신 업무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특히 홍 부총리 역시 EPB 출신이라는 점에서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소통 과정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울러 이피아 출신들의 장점은 기획력. 거시경제 정책을 짜는데 능해 ‘숲을 볼 줄 안다’는 평가를 받는만큼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현 정부와 궁합이 잘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EPB 출신들은 산업·복지·교육·농림 등 다양한 부문의 동향을 점검하고 예산도 짠다”며 큰 그림이나 종합 정책을 내놓기 때문에 현 정부의 기조와 잘 맞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뉴스웨이 주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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