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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엔 낮고 강소기업엔 여전히 높은 은행 문턱

[NW리포트]대기업엔 낮고 강소기업엔 여전히 높은 은행 문턱

등록 2019.01.23 10:10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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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석 삼강엠앤티 대표, 文대통령에 하소연수천억원 대만 해양프로젝트 수주 눈앞에 두고은행에선 재무제표만 따지며 거절해 무산될 뻔RG발급 年 10여 건 불과···이마저도 일부 편중"리스크 회피하고 손쉽게 돈 버는 관행 바꿔야”

그래픽=강기영 기자그래픽=강기영 기자

“대만 해상풍력발전 프로젝트의 하부구조물을 수주하기 위해 1년을 노력했는데 은행들이 선수급 환급보증서 발행을 해주지 않아 무산될 뻔했다. 다행히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편지를 써 줘서 계약이 성사될 수 있을 것 같다”

경남 고성에서 중소조선소를 운영하는 송무석 삼강M&T 대표의 말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지난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그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소개하며 지자체의 조력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연은 이렇다. 삼강M&T는 대만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해상풍력단지 조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으로부터 계약을 위해 계약이행 보장과 선수금환급보증 서류를 발행해 주겠다는 은행의 의향서 제출을 요구받았다. 이에 송 대표는 국책은행은 물론 주거래은행, 일반 시중은행 등에 검토를 요청했지만 한 곳도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조선업 불항으로 몇년간 적자를 기록하면서 ‘재무건전성’이 좋지 않은 게 이유였다. 서류를 제출해야 할 날짜가 다가오지만 해결책을 못 찾던 송 대표는 결국 마지막 이라는 심정으로 경남도청을 찾았고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수주 성사 시 행정적 부분을 지원하겠다’는 편지를 써주면서 일감을 따냈다는 전언이다.

결국 삼강M&T는 대만 기업 JDN과 567억원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기 하부구조물 제작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2017년 매출액의 46.12%에 해당하는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이 회사 입장에선 사활이 걸린 중요한 작업이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뒷맛은 씁쓸하다. 분명 정부와 민간 기업이 협력한 모범 사례로 남을 일이나 달리 보면 은행의 일을 정부가 대신 해준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일단 은행에서는 계약 사항을 바탕으로 뒤늦게 선수금 지급보증 심사에 착수한 상태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같은 양상이 되풀이 될 것이란 점이다. 증권가에서는 삼강M&T가 대만과 일본 해상풍력 프로젝트 등에서 약 3000억원 이상의 수주고를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프로세스가 바뀌지 않는 한 이 회사는 은행에 거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 때마다 지자체가 나서주길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또다시 ‘RG’···쳇바퀴 도는 중소조선소=대부분 중소조선소가 그렇듯 삼강M&T가 처한 어려움은 은행의 선수금 환급보증(RG) 이슈에서 비롯됐다. 조선업이 반등할 조짐을 보인다고는 하나 이들을 향한 금융권의 시선은 여전히 보수적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수금 환급보증은 말 그대로 선주가 지불한 선수금을 금융기관이 대신 돌려주겠다고 보증하는 제도다. 조선소가 선박을 기한 내에 만들지 못하거나 중도 파산할 위험을 대비해 마련됐다. 한국무역보험공사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나 시중은행 등이 참여하며 보통 이들이 RG를 발급해줘야만 계약이 성사된다.

그러나 조선업 불황이 짙어지면서 은행권의 RG 발급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대형·중견조선소는 간간이 주채권은행의 도움을 받았지만 중소형사는 사실상 시중은행의 지원이 끊기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조선소가 도산하면 막대한 선수금을 물어줘야 한다는 우려에 은행이 이를 기피한 탓이다.

지난 2017년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서도 최근 5년간 중소조선소에 발급된 RG 규모는 연평균 394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급건수도 ▲2013년 13건 ▲2014년 12건 ▲2015년 11건 ▲2016년 16건 등 매년 10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51개 중소조선소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마저도 일부에 편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가 ‘RG 발급 원활화’ 방안을 내놨지만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일감이 줄었고 각각이 기술 경쟁에서 밀려난 것도 원인 중 하나겠지만 일각에서는 은행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은행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RG 발급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통상적으로 각 은행은 ‘수주가이드라인’ 요건을 충족하는 선박에 대해서만 RG를 발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가 수주에 따른 악순환을 막는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평가항목엔 프로젝트 자체의 수익성뿐 아니라 조선소의 경영상황까지도 포함돼 있다는 부분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은행은 조선소가 RG 발급을 요청하면 회계법인과 함께 검토에 착수하는데 ▲프로젝트의 타당성 ▲회사의 캐시플로우(현금흐름)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면서 “사업의 수익성과 함께 조선소가 작업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전년과 당해 그리고 배가 인도될 시점 등 약 3~5년의 실적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RG 발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대로라면 중소조선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 불황과 맞물려 이들도 대형 조선소처럼 수년간 실적 부진에 시달려온 바 있어서다. 상대적으로 수주 규모가 작아 많은 수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렇다보니 선박 인도로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해 연명하거나 어렵게 따낸 일감마저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리스크 부담된다” vs “그 정도는 아냐”=은행도 편치는 않다. 건전성 관리가 시급한 현 시점에 섣불리 손을 잡아줬다가는 수십억원대 손해로 이어질 수 있으니 원성을 듣더라도 보수적으로 대처해야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중소조선소에 대한 RG 발급 감소는 엄연히 조선업 불황에 따른 것일 뿐 은행의 영업행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사실 은행이 RG 발급에 부정적인 것은 충당금과 관련이 깊다. 실제로 대출을 내주진 않았더라도 은행이 일정 비율을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엔 반론도 있다. RG에 대한 리스크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실제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규정 시행세칙을 보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확정 수출선수금 환급보증의 위험가중치는 50%, 미확정 수출선수금 환급보증은 20%다. 선주가 선수금을 냈다면 50%, 그렇지 않다면 20%라는 의미다. 이는 일반대출(100%)이나 상장 주식(400%), 비상장 주식(400%)의 위험가중치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게다가 RG는 선박이 선주에게 인도되고 조선소가 잔금을 전달받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만큼 일반 대출처럼 은행에 부담을 안길 위험도 적다. 대형조선소라면 모를까 건당 30억원에도 못미치는 중소조선소 보증에 은행이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이에 업계 전반에서는 조선업의 회복을 위해선 은행권도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비록 정부가 중소조선소에 대한 RG 지원 규모를 기존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확대했지만 시장 전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시중은행의 참여가 수반돼야 한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지원책을 내놔도 은행이 꺼려하면 소용이 없다”면서 “송 대표는 청와대서 이번 수주를 민관 협력의 모범사례로 치장했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아니면 은행 문턱이 높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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