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대 미국 투자 위한 SK이노의 ‘합의 필수’시장 최대 1조원 합의금액 예상 등 설왕설래“대화의 문 열려”···SK이노 어떤카드 내밀지 관심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합의가 필요하다. LG화학 쪽에서는 협상에는 임하되 최대한 좋은 조건을 원하는 눈치다. 시장에서는 이번 베터리전 합의금액이 최대 1조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17일 재계 목소리를 종합하면 LG화학은 ‘소송 불사’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 16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양사의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LG화학은 승기를 잡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LG화학이 지난해 11월 5일 ITC에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했다며 조기패소 판결을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제 두 회사의 소송은 변론이나 별도 절차 없이 오는 10월 15일 있을 ITC 최종 결정만 남게 됐다.
문제는 ITC가 최종 결정을 ‘조기패소 판결’과 같은 결과로 내리면 SK이노베이션의 베터리 셀·모듈·팩을 비롯한 관련 부품 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ITC가 지난 25년간 내린 결정을 보면 영업비밀 소송은 ITC 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이 ITC 위원회 최종결정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이 계속 관련 영업 활동을 미국에서 이어가려면 LG화학과 합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일단 LG화학은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고 밝혔고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8일 예상되는 결정문을 받고 관련 근거를 살펴보겠다는 반응이다.
재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합의를 이뤄내려면 적잖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무게 추를 두고 있다.
이번 소송 이슈에 밝은 관계자는 “3M 재직 시절부터 많은 소송전을 경험한 신학철 부회장이 LG화학 이동 직후 인력 유출 등의 사안이 있다는 것을 내부에서 보고 받고 왜 소송을 하지 않는지 의아해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며 “그때부터 즉각적으로 소송에 돌입하기로 하고 그 이전부터 LG화학 내부에서 모은 증거들을 결국 꺼내든 셈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반대로 SK이노베이션은 ITC 최종 판결까지 내려질 경우 현재 2조원 이상을 들여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한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에 건립 중인 배터리 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 16만대에 들어갈 부품 양산을 목적으로 지난해 착공한 곳이 멈출 위기인 셈이다.
특히 이 공장을 시작으로 이와 비슷한 규모의 2공장 추가 증설 계획도 SK이노베이션은 갖고 있다. 합사하면 총 3원에 이르는 규모다.
김정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불확실하기는 하나 작년 9월 LG화학이 (합의금) 5000억원을 요구했다는 점도 있었고 당시보다 유리해진 입장을 고려할 때 합의 금액은 5000억에서 1조원 사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ITC 판결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이에 있는 나머지 5건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두 회사는 지난해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서도 영업비밀 침해로 상호 소송을 진행했다. 미국 ITC와 델라웨어 법원에서 ‘특허침해’ 맞소송도 현재 진행형이다. 국내에선 지난해 5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해 압수수색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을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대응한 상태다.
상황이 이러하니 LG화학이 승기를 잡은 것이 확실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다만 LG화학이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말한 상황이어서 이제는 SK이노베이션이 어떤 합의안을 내놓느냐에 달라졌다.
LG화학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이제까지 LG화학이 R&D(연구개발) 비용을 투입하고 그렇게 키워온 산업을 SK이노베이션이 그 금액을 쓰는 대신 해당 인력에게 임금을 더 얹어주고 빼간 것에 대한 항의가 이번 사안에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LG화학은 국내 화학 기업 중 유일하게 매년 매출액의 3~4%를 R&D에 투자하고 2018년 처음으로 이 금액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배터리 R&D 비중이 이 가운데 30% 이상을 차지해 최근 5년간 이 분야 R&D 투자금액만 1조3000억원 이상이라는 게 정설이다.
LG화학은 1995년부터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1999년 국내 최초로 대규모 양산에 성공했고 2009년 세계 최초로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 볼트에 배터리를 공급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05년 하이브리드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착수해 2006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이후 2010년 국내 최초 순수전기차의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재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 크고 있는 곳이고 한중일 경쟁이 치열하다”며 “두 업체의 원만한 합의를 위해 정부에서 더욱 발 벗고 나설 가능성도 커졌다”고 분석했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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