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1월. 코오롱 오너 3세인 이웅열 전 회장은 전격 퇴진을 발표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남 이규호 부사장에게 언제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 전 회장은 단호했습니다. 아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 것이고, 스스로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잘 해낼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실상 이 부사장이 ‘후계자’라는 점을 만천하에 밝힌 것입니다.
이 부사장은 부친 퇴진에 맞춰 상무 1년 만에 전무로 초승진했습니다. 또 핵심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발령받았습니다. FnC부문은 별도 대표이사가 없던 만큼, 이 부사장이 최고경영자(CEO)나 다름없었습니다. 각사 전문경영인 협의체인 ‘원앤온리위원회’에도 합류하며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곧바로 경영권을 승계할 수 없는 만큼, 그룹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가 컸습니다. 이 전 회장이 돌연 은퇴할 당시 이 부사장은 35세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특히 이 부사장이 ㈜코오롱 전략기획담당에서 ‘캐시카우’(수익창출원)인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으로 이동한 것은 이 전 회장의 약속과 연관이 깊습니다. 아들의 경영성과가 두드러질 수 있도록 지지대를 세워준 셈입니다.
이 전 회장이 물러난지도 올해 벌써 3년차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라붙고 있습니다. 이 부사장이 총괄하던 2년 동안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실적이 후퇴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실질적 대표를 맡은 첫 해인 2019년 패션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7% 가량 위축됐고, 영업이익은 50% 가량 감소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패션시장이 침체된 지난해에도 매출은 11%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은 물론, 이 부사장이 2018년 초부터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온 셰어하우스(공유주택) 계열사 리베토 역시 연간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부사장은 지난해 7월 조용히 리베토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전 회장의 ‘능력을 인정받을 때까지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한 마디의 무게는 버거워보입니다.
코오롱그룹은 고공성장 중인 수입차 사업을 이 부사장에게 맡겼습니다. 이 부사장은 승진과 함께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전 회장이 40세에 선친 고(故) 이동찬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았다는 점으로 볼 때, 4세경영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치 않다는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사장이 한 단계 ‘레벨업’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하기 충분해 보입니다.
아들이 능력을 인정 받을때까지 주식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이 전 회장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 부사장의 그룹 지주사 ㈜코오롱 보유 지분은 여전히 0%입니다.
이 부사장은 이제 시장의 인정을 받을 시간입니다. 수입차 시장은 코로나19 확산 여파에도 연간 27만대 이상 팔리며 역대급 호황을 맞았습니다. 올해는 연간 30만대 판매 돌파가 예상됩니다. 코오롱글로벌이 유통하는 수입차 브랜드가 BMW와 아우디, 볼보 등 주류라는 점은 호실적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 부사장이 코오롱글로벌에서 기대를 밑도는 성과를 내더라도, 차기 회장에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하지만 승계 정당성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계 안팎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코오롱그룹 승계 작업을 두고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후계자가 주요 계열사 곳곳을 거치며 사업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호실적이 보장된 계열사로의 이동은 약점이 될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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