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 “쿠팡, 우리가 키우지 않아서 미국갔다” 일침“스케일업 투자 불충분 해···KIC가 산은 자회사였다면”2019년 벤처금융본부 신설, 스타트업·유니콘 집중 투자"산은 주업무는 미래 투자···구조조정에 매몰돼선 안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14일 온라인 기자간담회 막바지에 의견을 보탰다. 질의응답이 끝났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문을 열어 자신이 가진 관점을 가감 없이 내보였다.
이를테면 강남 부동산에는 정책이 어떻게 바뀌든 수익을 위해 고심하고 버티는 ‘인내자본’이 많은데 이런 자금들이 산업 쪽으로 흘러 들어와 차세대 산업 육성에 장기 포석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쿠팡이 외국에 상장한 것은 우리가 키우지 않아서 나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회장은 “아직도 스케일업 투자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어떤 때는 산은이 KIC(한국투자공사)를 편입하는 게 어떤가 하는 망상도 해봤다”고 덧붙였다. 막바지에 웃음을 곁들이면서는 “산업은행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스케일업은 사전적으로는 규모를 확대한다는 것인데 경제에서는 고성장 기업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직원 수 10명 이상인 스타트업이 최근 3년간 매출이나 연평균 성장률 20%를 넘을 때 스케일업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본다.
이 회장이 산은에 들어온 이후 기업구조조정에서 큰 성과를 얻었지만 가장 큰 관심은 스케일업이라는 게 산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산은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과거 일에 대한 수습이라는 점에서 과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며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만 하는 곳이 아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투자에도 관심이 많다는 걸 밖에서 잘 모르는 것 같다”라는 말도 나왔다.
실제 이 회장 취임 이후 구조조정 이슈가 많아지면서 구조조정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그 쪽에 올인하는 듯 보이지만 물 밑에서는 꾸준히 스케일업과 관련된 업무도 확대해 왔고 그 혜택을 받는 기업들이 속속 나왔다.
금융 업계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을 포함한 산은이 국책은행으로서 기본적으로 세금을 다룬다는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이 자금을 나라 전체 산업 역량 강화에 써야 하고, 산은도 기업 구조조정에만 함몰되면 안 된다는 의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혁신기업에 1조원···‘유니콘’ 성장 총력 =이동걸 회장은 2019년 말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혁신성장금융부문에 ‘벤처금융본부’를 설치하고 ▲벤처금융기술실 ▲스케일업금융실 ▲넥스트라운드실을 편제했다.
벤처금융기술실은 이제 막 태동한 벤처기업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금 지원을 주력으로 한다. 초기 우수 스타트업 지원과 제조업 활력 제고를 위한 모험 자본 제공에 집중한다.
스케일업금융실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이런 가능성이 보이는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그간 국내에서 유이콘이 된 기업 대다수가 해외에서 투자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해 산은이 국내 예비 유니콘 기업에 투자자가 되겠다는 취지다.
넥스트라운드실은 벤처투자자들의 네트워크 연결을 위해 ‘넥스트라운드’ 운영에 집중하며 이 플랫폼 안착과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매년 1회 개최하는 스타트업 박람회 ‘넥스트라이즈’의 홍보와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다.
이런 체제는 산업은행이 벤처기업 발굴, 유니콘 육성, 생태계 조성까지 힘을 보태겠다는 뜻이다.
특히 스케일업금융실의 행보는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이 회장이 말한 ‘비전펀드’와 비슷한 행보를 하고 있다. 스케일업금융실은 스타트업과 유니콘 후보 기업을 관심 목록으로 두고 카카오엔터프라이즈(1000억원), 프레시지(500억원), 지놈앤컴퍼니(200억원) 등에 지원 사격했다. 스케일업금융실이 투자한 인공지능(AI) 교육 스타트업 ‘뤼이드’는 비전펀드로부터 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스케일업금융실은 기업가치 500억원 이상의 기업에 50억원 이상을 투자하며 확보 지분율은 15%를 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간 투자사와 공동으로 예비 유니콘 기업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산하에는 바이오 투자 전담팀도 따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비바리퍼블리카 토스에 1000억원의 스케일업 지원에 나서는 등 핀테크 파트너 구축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아직 국책은행의 인터넷전문은행 투자가 없는 상황에서 산은의 이런 투자는 상징성을 지닐 전망이다.
◇‘함께 머리 맞대보자’···스타트업 용광로 ‘넥스트라이즈’ =넥스트라운드실이 운영하는 ‘넥스트라운드’도 빠질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시장형 투자유치 플랫폼을 표방하며 매달 1회씩 열리는 기업설명회(IR) 행사다.
2016년 이후 1600여개 기업이 IR을 실시했고 실제로 2조3800억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올렸다. 최근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그간 오프라인 넥스트라운드가 온라인으로 확장됐다.
매년 1번씩 열리는 스타트업 박람회 ‘넥스트라이즈’도 산은이 공들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당장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서울 코엑스에서 ‘넥스트라이즈 2021’이 열릴 예정이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은 넥스트라이즈는 유망 스타트업의 투자유치와 국내외 기업의 사업협력 지원을 목적으로 마련된 행사다. 산업은행, 무역협회와 더불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공동 주최한다. 행사는 부스전시, 컨퍼런스, 사업협력, 투자유치를 위한 1대1 상담으로 꾸려지는데 올해 부스 전시엔 270여개의 스타트업이 참여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현대차, 아마존 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국내외 대기업이 동참해 스타트업과의 상생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현대차는 부스에서 보스톤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장병돈 산업은행 혁신성장금융부문 부행장은 “이번 행사의 주안점은 스타트업과 대·중견기업간 상생협력,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글로벌화, 청년층의 건전한 창업분위기 조성, 대학생의 구직활동 지원 등”이라며 “넥스트라이즈를 아시아의 대표 스타트업 페어로 발전 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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