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간단하다. 5주 연속 순위 상승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5주 연속 순위가 상승한 경우는 없었다. 최초의 K팝 그룹인 것이다. 아무도 피프티 피프티가 블랙핑크의 기록을 깰지 예측할 수 없었다. 오히려 블랙핑크가 스스로 자기 기록을 깰 것으로 생각될 뿐이었다.
미국 빌보드보다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 차트를 언급하는 이유는 더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트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일인 것이다. 사실 K팝 최단기간 데뷔 4개월 만에 미국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릴지 아무도 예측을 하지 못했다. 놀랍다는 뉴진스의 기록, 데뷔 6개월의 빌보드 입성 기록을 확실하게 깼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의 선전은 음악의 유통 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많은 언론과 논객이 지적했듯이 틱톡이라는 젊은 세대의 SNS 채널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짧은 영상 속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어 챌린지 레이스까지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불문율이 된 원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SNS로 소통한다고 모두 방탄소년단과 같은 입지를 구축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틱톡을 활용해서 모두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의 '큐피드'가 이룬 성과를 재현하기는 어렵다.
우선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는 뉴진스와 마찬가지로 알파 세대에 해당한다. 그들은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지 못할뿐더러 월드컵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해외에서는 2005년이라는 기준으로 알파 세대를 규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이후 즉, 포스트 2002세대라고 할 수 있다. Z세대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뉴진스가 대부분이 중학생이듯 피프티피프티도 2004년생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X세대의 늦은 자녀이거나 밀레니얼 세대의 이른 자녀들에 해당한다. 그들은 태어날 때 이미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했다. 따라서 모바일로 SNS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디카는 따로 존재할 수 없었고 스마트폰 안에 이미 폰카가 내장되어 있었으며 촬영 즉시 SNS에 업로드하는데 익숙했다. 동영상을 바로 스마트폰을 통해 구동하고 공유했다.
그런데 이 알파 세대는 콘텐츠에 대해 이른 나이대부터 섭렵했기 때문에 세대적 구분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이냐가 더 중요했다. 수많은 콘텐츠 중에 자신에게 맞는 대상을 찾아 그것을 의미부여하고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혼자였거나 소수자 위치에 머물기 쉬웠다. 자신과 세계관이나 취향 등이 맞는 찾아내고 정체성을 형성하거나 맞춰가는 커뮤니티 형성 문화가 일상이다.
또한, 8 포켓 문화에 익숙하기에 연령대의 지원과 연대가 형성되었다. 문화적으로 포용성을 기를 수가 있었고 그것이 긍정적일 때 관계에 대한 밝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뉴진스도 누구나 사용하는 청바지에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를 가미했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버무려 냈다. 가상현실이나 초현실로 빠질 수 있는 미래 세대 담론을 잘 반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는 이보다 더 포용적인 곡을 선보였던 것이다.
'Cupid'는 케이 팝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강렬한 사운드와 화려한 퍼포먼스가 없다. 샹송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복고풍 신스팝 장르의 노래다.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청량한 느낌이 밀레니얼 세대까지도 포괄할 수 있을 듯싶다. 복고풍 감성 선율과 아련한 목소리가 끌어당기고 달콤한 보컬과 톡톡 튀는 랩 파트가 조화가 된다. 전반적으로 2000년대 초반의 음악적 자양분과 스타일의 요소를 잘 버무려 내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힙하게만 굴 것 같지만 그들도 결국, 실연에 가슴 아파하는 감정과 정서를 갖고 있으며, MZ 처럼 쿨하게만 굴지 않는다.
그들이 딛고 있는 현실과 처한 환경은 쉽지 않다. 그런 현실과 환경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들은 흙수저 걸그룹 아이돌이라고 불릴 만큼 신생 기획사의 소속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강점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대형 기획사 소속이었다면 일찍 오픈되어 막대한 물량 공세에 따라 입지를 세웠을 것이다. 즉 이미지가 소진되어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알파 세대는 대형 기획사가 아니라 이런 흙수저 기획사에서도 '중꺾마' 정신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도 아니고 그 자신 그리고 그 자신과 같은 또래들, 알파 세대가 만들어간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21세기가 되면 뭔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물론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영상 통화를 하는 기술 면은 그들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회문화의 변화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한 행태는 지금도 여전하다. 메타버스와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환상적인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미래 세대가 열광하고 열정의 도가니에 빠질 것처럼 생각했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품었던 21세기에 대한 알 수 없는 초월성은 알파 세대에 전승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갖고 있던 포부는 쉽게 버리지 않겠지만 다양성의 탐색과 그것의 융합은 알파 세대에 적합하다. 그들에게 20세기는 오히려 새로운 보물 창고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통합적 문화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알파 세대는 알파걸이 아니다. 알파걸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도 알 수가 없다. 알파 걸과 같은 스타일이 조직구성원을 다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알파 세대는 알파걸 스타일처럼 남보다 뛰어나다며 앞에서 선도하려고만 하지 않는다. 이념적으로 좌우에 경도되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처럼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자신감으로 분기탱천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무기력으로 자신 안으로 집중하는 Z세대와도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마치 스스로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다른 존재들 콘텐츠가 뛰어놀아 그들이 중심인 듯하지만, 우리들은 누가 진정한 중심인지 알고 있다. 이런 점을 본다면 뉴진스에 이어 피프티피프티같은 알파 세대들의 미래가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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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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