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발굴만 5년, 글로벌 허가엔 수백억 원 비용 발생 품목허가 확률 8% ↓···AI로 기간 줄이고 개발 확률 높여 데이터 확보 싸움, 정부 지원으로 신약 개발 가속화 기대
AI, '디스커버리' 단계 기간 단축, 개발 확률은 ↑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약 개발은 크게 ▲후보물질 발굴(Discovery) ▲전임상(Pre-Clinical Development) ▲임상 개발(Clinical Development) ▲상용화(Commercialization) 단계를 거친다. 통상 후보물질 발굴에서만 5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고 전임상~임상 개발 단계에서 5~10년 이상의 기간이 걸린다. 때문에 신약개발에 투입되는 비용 대부분이 이 단계에서 쓰인다.
막대한 시간·비용 투입에도 불구하고 상용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미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신약후보 물질이 품목허가 승인을 받을 확률은 7.9%에 불과했다.
AI는 기존의 신약 개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한 번에 100만건 이상의 논문과 1010개 화합물 탐색이 가능해 질환에 맞는 타깃 발굴이 용이해진다. 연구자 수십명이 1~5년간 해야 할 일을 하루 만에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글로벌 빅파마들은 타깃 발굴·후보물질 도출·임상시험·기존 약물용도 변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 화이자는 IBM의 왓슨을 도입해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고, 노바티스도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AI를 이용한 의약품 개발에 나섰다. 얀센은 AI스타트업인 베네볼렌트와 제휴해 임상 단계 후보물질 평가, 난치성 표적 신약 개발에 착수했고, 머크는 아톰와이즈의 AI 기술을 도입해 하루 만에 에볼라에 효과가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2개나 찾아내는 성과를 보였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는 AI를 활용할 경우 신약 개발 기간은 평균 10년에서 3년으로, 비용은 1조2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6억980만 달러(약 8000억원)에서 매년 45.7%씩 성장, 2027년 40억350만 달러(약 5조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태동 동아에스티 상무는 지난 10일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열린 R&D페어에서 회사가 개발 중인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DMB-3115'를 언급하며 "이 약의 글로벌 허가 신청 과정에서만 260억원이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지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합성신약은 보통 전임상 완료까지 50억원에서 150억원 정도 들고 바이오신약은 세포주 개발에만 100억원 이상 든다"며 신약 개발의 고충을 설명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바이오 신약 개발 진행이 어렵다 보니 바이오벤처들도 지금은 오히려 합성신약 쪽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AI의 필요성은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AI로 신약 개발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건 과장된 얘기다. 다만 후보물질 발굴 기간을 줄이고 임상 성공 확률을 높여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면서 "합성신약의 경우 5년간 약 2000개의 후보물질을 만들어내는데 AI를 활용하면 훨씬 더 많은 물질들을 도출해 내는 한편, 약으로 개발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한 상무는 또 "면역항암제를 예로 들면, 어떤 적응증으로 개발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개발 기간이 길어지게 된다. 다양한 적응증의 환자를 선택해야 하다 보니 임상 1상에서만 3년 이상 걸린다"며 "(AI를 통해 발굴한) 하나의 적응증으로만 개발하면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임상 성공 확률도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AI 신약 개발 협력 급증···'K-멜로디' 시행으로 성과 기대
국내에서도 신약 개발에 AI를 도입·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AI 신약 개발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6000억원 규모다.
대웅제약은 신약 개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달 글로벌 과학기술 기업 머크 라이프사이언스와 '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 및 신약 개발 전 주기 기술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머크 라이프사이언스는 신약 개발 과정에 필요한 데이터 및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대웅제약은 자체 개발 중인 웹 기반 모델링 플랫폼에 이를 적용해 신약후보 물질 발굴 및 검증, 모니터링에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대웅제약은 AI 개발팀을 신설하고 SK바이오팜 출신의 국내 컴퓨터 기반 신약 디자인 과정(CADD) 분야 전문가인 오경석 박사를 영입하기도 했다.
JW중외제약은 신테카바이오, 온코크로스, 디어젠, 큐어에이아이 테라퓨틱스 등 다수의 바이오 및 AI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 자체적으로 빅데이터 플랫폼 '클로버'를 구축, 이를 통해 항암제, 면역질환 치료제, 줄기세포 치료제 등 다양한 혁신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 중이다.
동아에스티도 AI 기반 신약 개발 기업 심플렉스, 연세암병원과 고품질 데이터를 기반으로 치매치료제 등 약물 개발에 나서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018년 자체 AI 기반 약물 설계 플랫폼을 구축했다.
유한양행, 동화약품, 보령, 삼진제약 등 다수 제약사도 AI 신약 개발 전문 플랫폼 회사들과 협업 중이다.
인공지능 기업과 협업하는 제약사들이 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뚜렷한 성과를 낸 사례는 아직 없다. 업계는 AI 기술이 곧 데이터 사업이기 때문에 기업 간 협력과 정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상무는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협력 사례는 지난 2019년부터 본격화되고 있으나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여줄 만한 결과물은 없는 상황이다. AI는 학습을 시켜야 하므로 많은 양의 빅데이터와 품질 좋은 데이터가 필요한 사업"이라며 "하지만 기업에서 환자의 데이터를 모으긴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제약사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는 미국 화이자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의 1/10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약사 및 벤처들의 신약 개발 가속화를 위해서는 AI 공공모델 확보가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 주도로 AI 신약 개발에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K-멜로디' 사업이 내년 중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지원으로 신약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AI 모델을 개발하면 AI 기업들의 역량이 강화되는 동시에 제약사 및 벤처 기업들의 신약 개발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최근 발간한 글로벌 이슈 파노라마 리포트를 통해 "'K-멜로디'는 분산된 데이터를 한 곳으로 집적시키는 효과를 내는 기술을 활용해 우수한 성능의 공용 AI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직접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경쟁기업 간 데이터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AI 신약개발플랫폼 구축으로 신약 개발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고 산업계의 AI 도입 및 활용도도 많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AI 신약 개발 현장의 어려움 중 하나는 다학제 융합 전문인력의 부족이다. AI와 신약 개발 두 전문영역 간 소통과 협업의 어려움도 융합인재 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AI 신약 개발 분야의 인력난을 조기에 해소하려면 재직자의 직무 전환을 돕는 AI 신약 개발 교육 확대, 관련 교육과정 등을 통해 융합인재가 현장에 지속 공급되는 시스템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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