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출 후 첫 역전···리브랜딩·디자인으로 차별화정 회장, 15년 전 기아 2년 연속적자로 대표 물러나저렴한 차 이미지 벗고 현대차와 '각자도생' 성공적
27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기아는 올해(1~10월) 66만3838대를 판매해 같은 기간 65만5952대를 판매한 현대차를 7886대 차이로 앞섰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다음 달까지 계속된다면 기아는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1994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 브랜드 판매 1위에 오르게 된다.
기아는 미국에서 최근 15개월 연속 전년 대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이달 중순 지난해 연간 판매실적을 넘어선 기아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다음 달 현지에 출시될 대형 전기SUV EV9은 사전 예약부터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V9은 출시되기도 전에 2024년 북미 올해의 유틸리티차 최종후보(3개 차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94년 미국에서 1만2163대에 그쳤던 기아는 5년 만에 10만대를 돌파했고, 2013년 50만대, 2021년 70만대를 넘어서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기아의 지난 29년간 기아의 미국 판매 성장률은 무려 5357.84%로, 같은 기간 474.38%를 기록한 현대차보다 10배 이상 높다.
기아는 1999년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이후부터 줄곧 15만대가량 현대차에 뒤처졌다. 하지만 2017년부터 판매 격차를 10만대 밑으로 줄이더니 2021년과 지난해엔 3만대 차이로 따라붙었다.
기아의 이 같은 급성장세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 2005년 3월 기아(당시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던 정 회장은 2008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정 회장이 기아의 경영 지휘봉을 잡은 기간 동안 적자를 기록했던 만큼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기아는 2006년 1253억원, 2007년 555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하며 만성 적자 위기에 몰렸었다. 기아는 2007년 미국에서 36만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판매는 30만5473대에 그쳤다. 당시 일본 차보다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졌던 기아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지만 엔저 여파에 발목이 잡혔다.
현대차보다 ASP 높은데 인센티브는 적어···브랜드 가치 급상승
하지만 지난 2년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기아는 미국 시장 내 핵심 브랜드로 환골탈태했다. 삼성증권이 추정한 올해 기아의 평균 판매가격(ASP‧글로벌 기준)는 3340만원으로, 현대차(3280만원)를 앞선다.
미국에서의 차종별 인센티브도 현대차보다 기아가 더 낮게 형성되고 있다. 10월 2일 기준 기아 스포티지의 인센티브는 300달러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반면 현대차 투싼의 인센티브(500달러)는 경쟁모델인 스포티지보다 200달러 높다. 기아 차종이 더 비싼데도 잘 팔리는 건 가성비로 승부했던 과거보다 브랜드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얘기다.
기아가 미국에서 현대차를 앞서게 된 이유로는 '리브랜딩'이 첫손에 꼽힌다. 브랜드의 상징인 엠블럼을 교체하고 사명에서 '자동차'를 떼어내는 등 과감한 리브랜딩을 통해 '싼 차' 이미지를 벗어나게 됐다는 평가다.
대대적인 리브랜딩으로 독립적 브랜드 위상 구축
실제로 기아의 급성장은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단행한 2021년 이후부터 두드러진다. 주요 편의사양 기본화 등 그룹 차원의 판매 전략이 같은데도 기아가 더 가파르게 성장한 배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기아는 현대차의 동생으로 여겨지면서 각종 선행기술과 새로운 편의사양은 늘 현대차에 먼저 탑재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리브랜딩 이후부터는 동등한 경쟁사로서 각자도생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브랜딩과 더불어 브랜드 정체성과 철학이 녹아든 디자인도 성장을 견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교수는 "현대차가 신형 싼타페가 디자인 논란에 시달리고 있지만, 기아는 출시되는 신차마다 디자인 면에서 호평받고 있다"며 "현대차와 차별화된 디자인과 상품성이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전략차종인 텔루라이드 출시와 엠블럼 교체 이후 현지에서 브랜드 충성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며 "기아가 현대차의 아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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