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22일 목요일

  • 서울 26℃

  • 인천 26℃

  • 백령 19℃

  • 춘천 25℃

  • 강릉 18℃

  • 청주 21℃

  • 수원 24℃

  • 안동 18℃

  • 울릉도 15℃

  • 독도 15℃

  • 대전 23℃

  • 전주 24℃

  • 광주 27℃

  • 목포 22℃

  • 여수 19℃

  • 대구 19℃

  • 울산 16℃

  • 창원 21℃

  • 부산 19℃

  • 제주 24℃

전문가 칼럼 기업 거버넌스의 원점 진단과 재모색(2)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기업 거버넌스의 원점 진단과 재모색(2)

등록 2025.05.22 08:00

공유

기업 거버넌스의 원점 진단과 재모색(2) 기사의 사진

공회전하는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의 후진성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 거버넌스 논란은 97년 외환위기까지 거슬러 내려가니 28년이나 해묵은 논란거리다. 당시 국내외적으로 외환위기의 근본원인으로서 한국 기업들의 나쁜 기업 거버넌스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등에 있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되었다. 예컨대 사외이사 제도 도입, 감사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설치, 소수 주주의 주주대표소송 요건 완화, 전자 및 집중투표제 도입,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 순환출자 신규 금지, 기업 공시 의무 강화 등 기업 거버넌스 선진화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전개되었다.

앞서 제도적 보완 노력과 그 형식적 측면만 놓고 보면 가히 월드 클래스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권위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들로부터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 평가는 박한 정도를 넘어 때때로 비난까지 받는다. 여전히 나쁘고 흠이 많은 기업 거버넌스로 인해 한국 자본시장은 디스카운트 되었다고 하고, 따라서 정부는 그것을 개선해야 명실공히 밸류업될 것이라고 말한다.

​왜 30년 가까이 되는 한국의 기업 거버넌스 개선 논의는 쳇바퀴 돌듯 공회전하고, 다양한 제도적 정책적 개선 노력은 실효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일까? 어떠한 문제점 때문일까? 문제를 제대로 진단해야 그에 맞는 개선책이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기업 거버넌스의 집

​결론부터 적자면, 나는 상장기업 거버넌스의 구성요소들간의 비정합성과 요소간 유기적 연관성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구성요소들끼리 서로 안 맞고 뒤틀려있으니 그러한 토대 위에 안정적인 기업 거버넌스가 놓여 원활하게 작동할 리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구성물 전체를 유기적으로 조망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문제를 접근해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향후 한국 기업 거버넌스 개선 노력은 지난 27년 과정을 답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자 머릿속에 하나의 집을 그려 보시길 바란다. 집의 가장 밑바닥에는 '초석'이 있다. 그 초석 위에 네 개의 '기둥'들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넓은 판이 놓여 있으며, 그 '판' 위에 '지붕'이 얹어져 비로소 하나의 집이 완성된다. 여기서 집에 기업 거버넌스 구성요소들을 대입해 보자. 가장 밑바닥인 초석은 '사회의 문화, 역사 및 가치체계 등'이 해당된다. 그 초석 위에 네 개의 기둥들이 세워진다. (1)번 기둥은 '소유구조'다. (2)번 기둥은 '자본시장 참여자의 성숙도'다. (3)번은 관련 '사법 시스템'이다. (4)번은 관련 '정책 및 제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네 개 기둥 위에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판'이 놓여 지고, 그 위에 거버넌스의 궁극적 목적인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지붕이 최종적으로 얹어져 집 한 채가 완성될 수 있다.

​그럼 '초석'부터 보자. 초석은 말 그대로 기반, 기초(basis)이다. 그렇다면 기업 거버넌스의 초석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했듯 한국사회의 '역사, 문화, 관습, 전통, 가치체계 등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유구한 역사 발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축적, 내재화된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서구로부터(주로 미국) 급격히 유입된 각종 시스템과 제도, 메커니즘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 가치체계 등과의 정합성이나 적실성 여부나 그 정도가 고려되지 않았다. 기반이나 기초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천착없이 그 위에 수입된 기둥을 세워 지은 집과 유사하다. 서로 안 맞으니, 서까래도, 지붕도 초기 완공 때와 달리 일정 기간이 지나면 뒤틀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흔들리고 또 허물어진다.

사유의 종속이 아닌 독창적 사유

지난 ​1월 최진석 교수가 한 매체에 기고한 '기본을 물어야 질서가 잡힌다' 제하의 칼럼을 공감하면서 읽었다. "한국의 취약성은 무엇인가? 사유의 종속성이다···.우리가 먼저 만든 것을 찾기 어렵다. 우리가 독립적(창의적)으로 생각(사유)한 적이 거의 없었음을 뜻한다. 이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생각해서 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한 생각의 결과를 따라 하기로 작정하고 살았다는 증거다. 우리가 아직 선도 국가가 아니라 추격 국가임을 드러낸다. 이것이 사유의 종속성에서 비롯된 결과다. 사유의 종속성을 벗어나지 않고는 선도국에 이를 수 없고, 추격 국가를 벗어나기도 힘들다."

​그렇다. 한국은 서구화 과정에서 몸에 옷을 맞춘 것이 아니라 거꾸로 했다. 옷에 몸을 꿰맞추며 여기까지 왔다. 그리스의 프로크루스테스 신화도 연상된다. 어떤 강도가 사람들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힌 후, 몸이 침대보다 길면 머리나 다리를 잘라내고, 짧으면 몸을 억지로 늘여 죽이는 끔찍한 신화 말이다. 이런 신화와 유사한 발전 과정에서 독창적 사유, 창조적 발견을 통해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시스템이나 제도 등을 발전시킬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기업 거버넌스 연구와 발전에 있어서도 먼저 우리 것, 우리 초석(basis)에 대한 천착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동아시아적 가치에의 천착

이철승 교수의 역저, '쌀, 재난, 국가(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는 서구와,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해 주었다.

​'페르낭 브로델'은 쌀농사의 동양(동아시아)과 밀농사의 서양 문화 등을 비교 분석한 학자로 유명하다. 또한 '제러드 다이어몬드'도 총균쇠를 통해 곡물의 생산과 진화가 인간 조직(국가) 및 기술 진화와도 맞물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더 일찍이 '에스터 보세럽'(1965)과 '카를 비트포겔'(1957) 또한 생태적 환경과 인간 조직의 진화가 서로 얽히고설켜 있음을 설파했다.

​동아시아의 급속하고 빠른 경제발전 요인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근저에 '협업의 네트워크' 혹은 '집단주의적 메커니즘'이 자리잡고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차고에서 혼자 혹은 친구와 단둘이 창업하는 것이 서구의 개인주의적 방식이라면, 다수의 숙련되고 표준화된 노동력이 '협력'을 통해 효율, 효과적으로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기제가 동아시아적 방식이다.

​서구 학계나 언론은 동양의 이러한 경제발전 방식을 집단주의(collectivism), 위계주의(hierarchism)라고 명명하며 폄훼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에 불과하다. 주지하듯 한국 사회 내에는 수많은 공식적, 비공식적 모임과 그 안에 위계들이 존재한다. 이 촘촘한 위계 구조를 통해 정보와 명령이 위아래로 유통 하달되고, 그에 대한 보상과 페널티도 가해진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이 위계란 일상 그 자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협업과 위계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양학적 관점에서 보면, 벼는 그 자체로 온갖 영양소를 거의 다 포함하고 있는 완전식품에 가깝지만, 밀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밀만으로는 생존이 안 되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거래와 교환이 발달했고 그 과정에서 계약문화가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일본 자본주의의 뿌리

여기서 자본주의를 우리보다 앞서 도입한 이웃국가 일본을 보자. 17세기 에도시대 상인이면서 사상가인 '이시다 바이간(1685~1744)은 오늘날 일본 자본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졌다. 이시다 바이간의 사상은 마쓰시다 고노스케와 오늘날 이나모리 가즈오로 계승되고 있다고 한다.

​흔히 '이타주의적 상도'로 알려진 이시다 바이간의 부의 원칙이란 다음과 같다.

(1) 고객은 정직하지 않은 상인에게 공감하지 않는다.
(2) 인생관과 일의 가치를 일치시켜라.
(3)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의무이자 본분이다.
(4) 자본의 논리와 조화를 이루는 도덕관을 확립하라.
(5)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주인은 천하 만민이다.

​이시다 바이간은 상업이 멸시받던 시대에도 "세상의 재산을 유통하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상업은 자연스러운 일, 즉 자연의 섭리이며 올바른 상행위에 의해 재산이 산처럼 불어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상업의 본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시장과 국부에 관한 설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개인에게 '일과 인생'의 의미, 정직한 이익 추구의 당위를 깨닫게 해줬다. "내가 타인의 성실함과 불성실함을 잘 살피고 있듯, 타인도 나의 성실함, 불성실함을 항상 살피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정직하면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 점이 결국 드러나게 된다." (한원, '정의로운 시장의 조건' 中)

그렇다면 한국 자본주의의 뿌리는 있는 것일까. 있다면 무엇일까. 이것이 궁금하다. 뿌리를 도외시한 기업 거버넌스 논의는 사상누각을 쌓은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