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에 차세대 원전 부상현대·삼성·DL·대우, 설계·투자·EPC 전략으로 승부2030년 상용화 앞두고 실증 경험이 경쟁력 좌우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전(SMR) 시장 선점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SMR이 미래 에너지 산업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자 건설업계 역시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동일한 SMR 시장을 겨냥하면서도 각기 다른 전략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설계 용역 수주를 통해 초기 사업 경험을 확보하거나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시공 레퍼런스를 축적하는 방식이다. 일부 기업은 사업 개발과 지분 투자 단계부터 참여하며 향후 설계·조달·시공(EPC) 사업 진출 기반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SMR 시장이 2030년 전후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탄소중립 정책, 에너지 안보 강화가 맞물리며 시장 규모가 수백조원대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경제성 확보와 인허가, 안전성 검증 등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AI가 부른 원전 부활···수백조원 SMR 시장 개막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원전 산업은 탄소중립 기조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속에서 점진적으로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 공급 능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 투자와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월가 주요 금융기관들은 올해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규모가 7000억달러(약 1081조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원전 산업 전반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차세대 원전으로 평가받는 SMR은 모듈화 생산과 표준화 설계를 통해 건설 기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수요에 맞춰 단계적으로 설비를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SMR이 AI 데이터센터와 탄소중립 시대를 뒷받침할 핵심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SMR 시장 규모가 2035년 전후 수백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원(NNL)은 2035년 전 세계 SMR 시장 규모가 5000억달러(약 772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 영국, 캐나다 등이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면서 글로벌 원전 산업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 역시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SMR 산업 육성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차세대 원전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 첫 상업용 SMR 사업 추진도 가시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첫 프로젝트가 향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호기·개발·설계·EPC···건설사별 차별화 전략 구축
국내 건설사들이 SMR 시장 선점 경쟁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국내 첫 상업용 SMR 사업 추진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부산 기장군을 국내 첫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건설 부지로 선정하고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이 향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핵심 레퍼런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국내 수주 경쟁을 넘어 미래 에너지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평가다.
원전 시공 실적 측면에서는 현대건설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건설은 국내 대형 원전 36기 가운데 24기를 시공하며 국내 최다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 원전 기업 홀텍 인터내셔널과 협력해 SMR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SMR 파일럿 프로젝트와 추가 원전 건설 계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에너지 개발사 페르미 아메리카가 추진하는 마타도르 원전 프로젝트의 기본설계를 수행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 가운데 가장 먼저 글로벌 SMR 상용화 경험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투자와 사업 개발 역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약 7000만달러를 투자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미국과 루마니아 등에서 사업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고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뉴스케일파워와 함께 SMR 프로젝트 기본설계를 완료했으며, 체르나보다 원전 3·4호기 사업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단순 시공을 넘어 투자와 개발, 운영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DL이앤씨는 전략적 투자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사업 수행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현재 약 80명의 SMR 전담 인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0여 명의 엔지니어가 미국 SMR 개발사 엑스에너지의 표준화 설계 사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 나머지 인력은 사업 개발과 영업, 시공 준비 등 후속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DL이앤씨가 향후 엑스에너지가 추진하는 글로벌 원전 사업에서 EPC 수행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특히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차세대 원전 인허가 체계인 '10 CFR Part 53' 도입을 추진하면서 비경수로형 SMR 시장 확대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수혜 가능성도 주목된다.
대우건설은 해외 EPC 역량과 국내 원전 생태계 협력을 기반으로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 등과 함께 한국형 i-SMR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하며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에도 참여하며 해외 대형 원전 수행 경험 확보에 나서고 있다.
건설사들이 SMR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 주택 경기 둔화와 도시정비사업 경쟁 심화, 해외 플랜트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SMR이 향후 수십 년간 안정적인 성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원전 시공 실적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 얼마나 많은 상용화 경험과 기술력을 축적하느냐다. 글로벌 파트너십과 지분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실제 프로젝트 수행 경험과 기술 내재화에 성공한 기업이 향후 국내외 SMR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승부는 실증 경험···2030년이 SMR 시장 분수령
SMR 시장의 미래가 장밋빛 전망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상업성 검증이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초기 투자 부담은 적지만 실제 발전 단가와 운영 효율성, 유지보수 비용 등은 상업 운전 이후에야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허가 절차와 안전성 규제 역시 주요 변수로 꼽힌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비롯한 각국 규제기관들은 기존 대형 원전과는 다른 새로운 심사 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글로벌 SMR 프로젝트 상당수는 여전히 실증과 인허가 단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원하는 테라파워와 엑스에너지, 카이로스파워 등의 주요 프로젝트 역시 건설과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며, 본격적인 상업화 시점은 대부분 2030년 전후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업계는 SMR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탄소중립 정책,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세 가지 흐름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30년 전후 본격적인 상용화 국면에서 누가 먼저 기술력과 사업 경험을 확보하느냐가 향후 글로벌 SMR 시장 주도권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SMR 시장은 2000년대 초반 해외 플랜트 시장과 유사한 초기 단계"라며 "과거 해외 플랜트가 국내 건설사들의 성장 동력이었다면 앞으로는 SMR이 그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10년 동안 누가 먼저 실증 경험과 기술 내재화를 확보하느냐가 글로벌 SMR 시장 판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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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주현철 기자
jhchul37@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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