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 1700억·CPS 3300억 할증 발행핵심 파이프라인 후기 임상 선택지 확보데이터 입증 부담은 커져
정부 주도 정책형 펀드인 국민성장펀드가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에 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은 정책 자금이 지분 전환 시 '업사이드(상승 가치)'에 가까운 구조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만큼 리가켐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느냐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29일 금융당국과 업계의 시각을 종합하면, 이번 투자는 특정 후보물질 하나의 성공을 믿었다기보다 리가켐이 쌓아온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의 반복 확장성과 글로벌 검증 이력에 베팅한 성격이 짙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리가켐을 국내 대표 ADC 신약개발 기업으로 지목하며, 2015년 이후 누적된 약 9조60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성과와 8건의 글로벌 임상 진척도를 주요 투자 배경으로 꼽았다. 항체와 약물, 링커를 결합하는 ADC 원천 기술의 특성상 하나의 성공적인 플랫폼이 다양한 파이프라인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신약 개발의 실패 가능성이 낮다는 뜻은 아니다. 통상 신약 후보물질은 임상 2·3상 등 후기 단계로 진입할수록 기하급수적인 비용이 소모되고 리스크 역시 커진다. 다만 리가켐은 단일 파이프라인의 성패에 회사의 존폐가 걸린 일반적인 바이오 벤처와는 궤를 달리한다. 글로벌 제약사에 이미 기술이전(L/O)을 마쳐 파트너사가 주도하는 파이프라인과, 회사가 직접 후기 임상까지 끌고 갈 핵심 후보군을 동시에 굴리는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즉, 국민성장펀드 측은 검증된 플랫폼이 창출해 낼 장기적인 캐시카우(Cash Cow)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측은 "리가켐바이오는 혁신적인 결합 방법과 안정적인 링커에 대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 ADC 플랫폼으로 지난해 세계 ADC 어워드에서 '최고의 ADC 플랫폼 기술'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글로벌 기술력을 확인했다"면서 "이번 투자는 글로벌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텍을 지원하여 R&D 성과가 상업화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할증 발행, '인내 자본' 성격
자금 조달 구조를 뜯어보면 투자자의 신뢰가 드러난다. 리가켐은 1700억원 규모 사모 전환사채(CB)와 3300억원 규모 제3자배정 의결권부 전환우선주(CPS)를 통해 총 5000억원을 확보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발행가액이다. 두 증권의 전환가액은 모두 주당 14만9300원으로 책정됐는데, 이는 기준주가(14만4309원) 대비 약 3.5% 비싸게 책정된 '할증(Premium) 발행'이다. 투자자 측에서 별도의 할인율을 요구하기는커녕 웃돈을 얹어주면서 지분 확보에 나섰다는 의미다.
여기에 3300억원으로 과반을 차지하는 CPS는 실패 시 원리금 상환을 우선하는 일반 채권과 달리, 주식 가치 상승에 온전히 노출되는 모험 자본에 가깝다. CB 역시 이자율이 0%로 설정되었으며 전환 청구는 발행 2년 뒤인 2028년 7월 이후부터 2036년 6월 만기 직전까지만 가능하다. 단순 이자 수익이나 단기 차익을 노린 대출이 아니라, 후기 임상 진척과 기술 가치 상승을 전제로 기다려주는 전형적인 '인내 자본(Patient Capital)'인 셈이다.
기술이전·자체 개발 양립
리가켐의 핵심 변수 중 하나는 현금 소진 속도였다. 올해 1분기 연구개발비(R&D)가 700억원을 훌쩍 넘기고 영업손실이 확대되면서, 2024년 초 최대주주 오리온이 수혈한 자금으로 번 '2년'의 시간표 안에 유의미한 ADC 임상 데이터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이번 5000억원은 그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대폭 연장한 자금이다. 리가켐 측은 이번 조달 자금을 타사 인수합병(M&A)이 아닌 핵심 파이프라인의 후기 임상(2·3상) 수행과 차세대 플랫폼 확보 등 오직 R&D에 집중 투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일각에서는 두둑한 실탄을 확보한 리가켐이 기존의 주력 모델이었던 조기 기술이전(L/O)을 중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회사는 선을 긋고 있다. 매년 3~5개 신규 파이프라인이 임상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이를 모두 자체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리가켐은 기존처럼 R&D 재원 확보를 위한 기술이전을 활발히 이어가되, 전략적 가치가 높은 일부 핵심 후보물질에 한해서만 직접 후기 임상까지 주도하겠다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을 명확히 했다. 얀센과 최대 17억달러 규모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임상 1/2상을 공동 진행 중인 'LCB84(TROP2 ADC)'의 사례가 대표적 예시다. 공개된 투자 조건에서도 기술이전을 제한하는 별도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임상 초기 단계에 기술을 넘기면 실패 위험은 줄일 수 있지만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공했을 때의 막대한 과실은 글로벌 빅파마 몫이 된다. 이번 5000억원은 리가켐이 핵심 자산을 가치가 높은 구간까지 직접 끌고 갈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리가켐바이오 관계자는 이번 선정과 관련해 "기존 기술이전 전략을 그대로 유지·병행하면서, 가치가 큰 핵심 자산에 한해 후기 임상까지 직접 수행하는 선택지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면서 "이번 자금은 M&A가 아닌 연구개발(R&D) 및 임상개발에 집중 투입된다"고 말했다.
이호철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이번 투자에는) 최대주주 오리온도 1250억원으로 동시 참여했다"면서 "주요 파이프라인 임상 성과 가시화에 따라 ADC 플랫폼 콘쥬올과 개별 에셋의 추가 빅파마 기술수출이 가시권에 임박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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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bottle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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