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바이오시밀러: 고도로 유사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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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시밀러: 고도로 유사한 약

등록 2026.09.26 07:49

이병현

  기자

세포 배양 특성상 미세 변이 필연적핵심은 '완전 동일' 아닌 '임상적 동등성'韓·EU, 3상 면제 등 '맞춤형 임상' 도입 가속

사진=AI(챗GPT) 생성사진=AI(챗GPT) 생성

바이오시밀러(동등생물의약품) 허가 심사에서 수백억원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던 대규모 비교 임상 3상의 무게가 줄어들고 있다. 대신 분자 구조와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원자 단위에 가깝게 뜯어보는 정밀 물리·화학적 분석 기술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추세다.

국내외 규제기관의 기조 변화는 이미 가시화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허가·심사 규정'을 개정해 품질과 비임상, 약동학적 비교동등성을 확고히 입증한 바이오시밀러에 대해 치료적 확증 임상시험(3상) 및 반복투여독성시험 자료 제출을 면제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확립했다. 모든 품목의 임상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심사의 중심축이 '임상 결과'에서 '분석 과학'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공언한 셈이다.

글로벌 규제 표준을 이끄는 유럽 역시 보폭을 맞추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축적된 규제 데이터와 정밀 질량분석 기술을 근거로 '맞춤형 임상 접근법(tailored clinical approach)'을 가동했다. 제품 특성이 충분히 규명된 생물학적 제제라면 약동학(PK)과 기본 안전성 데이터만으로 대규모 비교효능 임상을 면제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이다.

실제 적용 사례도 등장했다. 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는 독일 프레제니우스 카비가 개발한 로슈의 유방암 치료제 퍼제타(성분명 퍼투주맙) 바이오시밀러 '페브릴조'에 대해 품목허가 승인 권고를 내렸다. EMA는 페브릴조가 맞춤형 임상 접근법을 통해 유효성 입증을 위한 3상 없이 허가 트랙을 밟은 첫 바이오시밀러라고 공식 명시했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분자 구조가 100% 동일하지도 않고, 약효를 검증하는 최종 임상 단계까지 건너뛴 의약품이 어떻게 동일한 적응증의 환자에게 처방될 수 있는 것일까.

살아있는 세포가 만든 단백질···'완전 복제'는 불가능


바이오시밀러를 통상 '바이오 복제약'이라 부르지만, 화학합성의약품의 제네릭(Generic)과 동일 선상에 놓으면 오해가 생긴다.

아스피린 같은 합성의약품은 화학식을 그대로 합성해 분자 구조가 완전히 일치하는 쌍둥이 약물을 만들 수 있다. 주성분의 화학적 동일성을 증명하고 체내 흡수 속도 등을 비교하는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만 거치면 제네릭 허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항체나 인터페론 같은 바이오의약품은 대장균, 효모, 동물 세포 등 살아있는 생물체를 배양해 생산한다. 숙주 세포의 종류, 배양 온도, 정제 방식의 미세한 편차에 따라 단백질의 3차원 입체 구조, 당쇄(당 사슬) 결합 형태, 전하 변이 등에서 자연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심지어 오리지널 의약품조차 생산 배치(Batch)마다 관리 기준선 안에서 미세한 구조적 변동이 일어난다.

EMA를 비롯한 각국 규제당국이 바이오시밀러를 '복제약'이라 부르지 않는 본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자량 수십만 달톤(Da)에 달하는 거대 단백질의 미세한 이질성을 100% 동일하게 복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규제기관들은 '완전한 동일성' 대신, 오리지널(참조의약품)과 '고도로 유사(Highly similar)'하며 효능과 안전성, 면역원성에서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음'을 증명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바이오시밀러의 '시밀러'는 대충 비슷하다는 타협이 아니라, 잔여 차이가 인체에 무해함을 입증해야 하는 고도의 통제 개념이다.

임상보다 정밀 분석이 더 정확···'총체적 근거'로 좁히는 불확실성


바이오시밀러 개발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임상 환자 모집이 아닌 '원자 수준의 비교 분석'이다.

개발사는 1차 아미노산 서열부터 고차 단백질 접힘 구조, 불순물 응집체, 당쇄화 패턴을 질량분석기 등으로 비교한 뒤, 표적 수용체 결합력과 작용기전을 세포 기반 시험관(in vitro) 시험으로 대조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비교분석평가(CAA)'를 바이오시밀러 심사의 최우선 토대로 삼는 배경이다.

이후 인체 투약 단계로 넘어가 약물의 흡수·분포·대사·배설을 확인하는 약동학(PK) 및 약력학(PD), 약물에 대한 체내 항체 반응을 체크하는 면역원성 평가를 진행한다. 이 단계까지 오리지널과의 동등성이 명확히 입증된다면, 과거 필수 코스로 여겨졌던 대규모 비교효능 3상은 '중복 검증'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글로벌 규제기관 판단이다.

미국 FDA 역시 비교효능 임상시험이 1~3년의 시간과 평균 2400만달러(약 320억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을 소모함에도 다중 비교분석평가에 비해 약물 간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민감도는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환자의 체질, 병용 투약, 질병의 진행 정도 등 외부 변수가 뒤섞인 임상 3상 데이터보다, 오차 범위가 극히 제한된 첨단 분광·질량분석 장비가 제품 간 불일치를 더 날카롭게 잡아낸다는 의미다.

따라서 3상 면제나 축소는 '검증 기준 완화'가 아니다. 약물에 대한 불확실성을 임상시험이라는 간접적이고 변수가 많은 단계에서 거르는 대신, 제조공정 설계와 정밀 물리화학 분석이라는 '원천 단계'에서 해소했기 때문에 가능한 규제의 과학화다.

적응증 외삽과 상호교환성···글로벌 빗장 풀리는 규제 장벽


한 가지 질환에 대해서만 약효를 확인하고도 오리지널이 보유한 다른 질환까지 판매 권리를 획득하는 '적응증 외삽(Extrapolation)' 역시 이 같은 원리에 기반한다.

오리지널 항체의약품이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 궤양성 대장염 등 다양한 적응증을 갖고 있을 때, 바이오시밀러는 한 질환에서 동등성을 입증하면 나머지 적응증을 과학적 근거로 승계할 수 있다. 이는 단순 추정이 아니라, 표적 수용체와의 작용기전(MoA)이 각 질환군에서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구조·기능 분석으로 증명해야 승인된다. 불필요하게 모든 환자군을 대상으로 임상을 반복할 윤리적·경제적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국가별로 상이했던 '상호교환성(Interchangeability)' 장벽도 낮아지고 있다. 유럽은 일찌감치 EMA 승인을 받은 모든 바이오시밀러를 오리지널과 상호교환 처방이 가능한 의약품으로 규정했다. 반면 미국은 의사의 개입 없이 약국에서 자동 대체조제(Substitution)가 가능하도록 '인터체인저블'이라는 별도 허가 트랙을 유지하며 추가적인 교체 투여 임상(Switching study)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FDA 또한 데이터 축적에 힘입어 별도 임상 없이 기존 바이오시밀러 비교 데이터만으로 상호교환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개정을 추진 중이다. 미국 의회 역시 관련 규제 완화 법안을 발의하며 제도적 일원화에 힘을 싣고 있다. '인터체인저블' 지위가 품질의 우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확산된 결과다.

K-바이오, 기회이자 위기···원가 경쟁력과 공정 통제력이 승패 가른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유럽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경쟁을 통해 절감된 누적 의료 재정은 750억유로(약 110조원)를 넘어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임상 절차 유연화를 권고하고 주요 선진국이 이를 따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개발 장벽을 낮춰 더 많은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진입을 유도하고, 약가 인하 경쟁을 통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러한 규제 패러다임 전환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 등 국내 바이오시밀러 선도 기업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개발 기간 단축과 통상 500억~1000억원에 달하는 임상 3상 비용 절감은 신속한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호재다. 하지만 글로벌 빅파마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후발 인도·중국 기업 역시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진입 장벽 자체가 대폭 낮아진다.

결국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승부처는 '대규모 임상을 완주할 자금력'에서 '오리지널과의 미세한 차이를 과학적으로 통제·입증하는 고도의 분석 역량과 원가 절감형 세포 배양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 임상이 줄어드는 만큼 개발사의 생산 수율과 공정 관리 능력이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핵심 잣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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