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은 '동주'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는 배역에 집중한 나머지 죄송스러움이 밀려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런데 눈물의 결이 이전에 봐오던 것과는 조금 다랐다.
눈물 한 방울에 담긴 박정민의 진심은 와닿기 충분했다. 그가 연기한 배역이 허구의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송몽규였기에 울컥하는 박정민의 모습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동주'(감독 이준익)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영화. 영화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따라가며 송몽규의 삶을 비춘다.
영화는 뜻밖에 송몽규를 알게한다. 윤동주를 보러갔다 송몽규를 알게 하는 흥미로운 영화다. 이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는 교과서 속 윤동주 시인이었다.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에 몸을 마친 송몽규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같은 감독의 안타까움은 영화에 그대로 녹아있다. 송몽규를 연기하는 박정민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송몽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 굴로 뛰어 들어가 자신의 목소리를 냈어요. 대본을 받지 전까지 나조차 송몽규 라는 분에 대해 잘 몰랐죠. 온통 불의였던 시대에 비합리 적인 많은 것들과 싸우던 사람들이 있었죠. 나라의 독립을 어찌 개인이 이룰 수 있겠어요.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궈낸 것이겠죠. 당시 수많은 잊혀진 이름을 인식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배역에 접근하는 법부터 숙제였다. 교과서에 박제된 송몽규를 스크린을 통해 살게해야 했기에 박정민은 골몰했다.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를 알고 싶었지만 알 수 없었다. 인정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박정민은 북간도에 위치한 송몽규 선생의 묘비에도 찾아가며 배역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맞춰지지 않는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어요. 막막했죠. 그렇지만 맞출 필요가 없었어요. 사상이나 감정 모두 모순에 답을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중간에 ‘어 이건 뭐지’하는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찾으면 됐죠. 그걸 깊게 끌어가다보니 힘들었어요. 70년 전에 그분이 하신 일이니 어떻게 하려 하는 순간 훼손될 것 같았죠. ‘왜’라는 것에 마음으로 다가가며 연기했습니다.”
송몽규는 왜 그랬을까. 그를 1년 동안 끌어안고 있던 박정민이라면 물음에 답을 얻지 않았을까.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알 수가 없어요. 분명 시대에 불합리함, 부당함에 대한 본능적 반항심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분 만이 아는 거겠죠. 동기보다 당시 어떤 감정이었을까 하는 점에 주목했어요. 억울함, 분노 그 안에 모두 있었겠죠.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오류도 있었고 실수도 있었죠. 과잉은 지양하면서 깊이 있게 다가가려 했어요.“
이준익 감독과의 만남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박정민은 그와의 만남 당시를 회상하며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다며 의미를 덧칠했다. 2015년 이맘때, 둘은 만났고 그렇게 박정민은 몽규가 되었다.
“지난해 이맘때, 많이 힘들었는데 이준익 감독님을 만났어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죠. 운이 좋았죠. 사실 전화나 문자를 잘 안하는 성격인데 가끔씩 감독님이 보고싶어서 전화를 드릴 때가 있어요. 신기하죠. 내가 왜 이러나 싶고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유쾌하고 명쾌하신 분이에요.”
박정민은 보기와 달리 내성적이다. 쾌활한 강하늘과 달리 박정민은 정적이었다. 미사여구로 자신을 치장하기 보다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을 투박한 말 속에 담았다. 하지만 그 자리는 불편해보였다. 아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게 편치는 않았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런 진심이 참 좋았다. 이토록 내성적인 박정민은 그렇기에 연기를 한다고 한다.
“연기는 해소의 창구가 돼요. 평상시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표출하지 못하는 감정을 허락받고 표출할 수 있는 장이 연기에요. 화내도 되고, 울고 웃어도 되는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잖아요. 그게 좋아요.”
박정민은 ‘동주’와 함께 서른이 되었다. 엄연히 말해 송몽규와 함께 서른을 마주했다. 이를 짚어내자 서른이 된 배우 박정민은 ‘동주’와 함께함에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동주’와 서른살 박정민을 하나의 동그라미로 묶었다.
“의미가 있네요. 열심히 만든 ‘동주’라는 작품을 서른살에 개봉하며 맞이하는 의미가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열심히 만든 작품이기에 기쁨은 더욱 크죠. 음, 그래서 어쩌면 서른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네요. 잠도 못자고 피곤하지만 재미있고 짜증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박정민에게 ‘동주’란 어떤 작품이냐고 물었다. 한참 고개를 떨구고 골똘히 생각하던 박정민은 한 자, 한 자 원고지에 써내려 가듯 말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수 많은 송몽규가 살았었다는 것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잊혀진 이름들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런 분들이 계셨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주’는 가슴 속에 오래 담고 갈 영화에요.”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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