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9월부터 요금할인율 인상···이통사 “법적근거 없다”반대 유지 어려워···보편요금제 등 정부 협의 필요부정적 여론도 심화···시민단체 “행정소송 시 국민 분노”물러서기도 어려워···실적 정체, 수익 타격 우려
이통사들이 이번에도 거부 움직임을 보인다면 여론의 강력한 비판은 물론 이후 보편요금제 도입 논의나 주파수 경매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유가 대폭 줄어들 수 있다. 이통사업 정체로 매출 감소가 우려되는 이통사들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처했다.
21일 이통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오는 22일 대통령 업무보고가 예정됐다. 22개 정부부처 중 첫 순서다.
과기정통부는 국민 요구가 컸던 통신비 인하 대책 추진에 대해서 보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가 대표 공약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요금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올리는 과기정통부 대책은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18일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구매할 때 지원금 대신 약정기간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선택약정요금할인율을 이 같이 인상하는 내용의 행정처분을 이통 3사에 통보했다. 인상 시기는 다음달 15일부터다.
이통사들은 ‘할인율 25%’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전처럼 반대 입장을 고수 중이다. 정부가 최대 5% 가감 범위에서 요금할인율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한 과기정통부 고시에 ‘무엇’의 5%인지 분명히 명시되지 않은 까닭이다. 이통사들은 5%의 기준으로 ‘기존 할인율’을 봐야하며 그에 따라 정부가 잡을 수 있는 최대 요금할인율은 20%의 5%인 1%를 더한 ‘21%’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통사들이 반대하는 동안 정부의 통신비 인하 대책은 수차례 후퇴했다. 문 대통령이 공약으로 꼽고 여론도 강력하게 요구한 1만1000원 기본료 폐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통사들은 기본료를 일괄 폐지하면 연간 7조9000억원 수준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것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한 바 있다.
요금할인율 25% 적용 대상도 신규, 재약정 가입자로 축소됐다. 당초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위)가 지난 6월 발표한 통신비 인하 대책엔 20% 요금할인을 이미 받고 있는 기존 가입자도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이통사들은 정부가 고객과 이통사 간 민간계약에 개입할 권한은 없으며 기존 가입자까지 요금할인폭을 높이면 막대한 매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5G에 대한 진지한 고민’ 보고서에서 할인율이 25%가 되면 이통사들은 연간 3200억원의 매출 감소를 볼 것으로 분석했다. 전체 이통시장 가입자 중 선택약정 가입자 비율이 현재 27%에서 30%로 증가하면 연간 5000억원, 40%는 1조1000억원의 타격을 예상했다.
과기정통부는 선택약정 요금할인율의 상향 대상을 신규 가입자들로만 한정했다. 기존 가입자들을 배제한 것은 법적 권한이 과기정통부에 없기 때문이다.
신규 가입자들로만 한정해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당장 내달 갤럭시노트8, V30 등의 신규 단말 출시가 예고돼 있다. 신규 프리미엄 단말 가입자의 80~90%는 선택약정 요금할인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번호이동건수는 약 705만건에 달한다. 25%로 상향 조정할 시 보조금 보다 요금할인이 더 많아 쏠림현상이 예고된다. 번호이동 가입자의 대부분이 약정 종료 이후 통신사를 변경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25% 선택약정 가입자는 큰 폭으로 증가한다.
이통사들이 정부가 할인율 인상을 강행할 시 행정소송도 가능하다는 강수를 놓은 이유다. 그러나 현실 분위기는 점차 어렵게 흘러가고 있다. 이통사들이 “국민의 통신비 인하 바람과 정부 정책 취지에 이해한다”는 입장을 종종 내비쳤지만 결국 반대 일변도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통사가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마저 거부한다면 부정적 여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시민단체들은 지난 16일에 이어 21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선택약정 할인율 25% 상향과 기존 가입자 적용을 함께 요구하며 이통사들에 경고했다. 해당 대책에 반대하며 정부에 행정소송을 건다면 “국민적 분노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통 3사가 통신비 인하 조치에 저항하고 있는 상대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어질 통신비 인하 대책과 주파수 경매도 부담이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2만원대의 저렴한 보편요금제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3만원대 요금제가 제공하는 문자 무제한, 음성 200~210분, 데이터 1.0~1.3GB를 보편요금제에 적용해 전체적으로 요금제의 음성, 데이터 제공량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이외 이통사의 지원금과 단말기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을 나눠 공시해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는 ‘분리공시제’도 통신비 대책 중 하나로 고려될 확률이 높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지난 9일 시민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분리공시제 도입 등 통신시장 투명성을 강화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여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통신비 인하 대책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통사들이 초반부터 강하게 반대 기조를 유지한다면 보편요금제나 분리공시제 논의 때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주파수 경매와 전파 사용료 문제에서도 이통사들이 정부에 의견을 제시할 만한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 이통사들은 통신비 인하 부담을 지는 대신 통신사업의 자원인 주파수 구매, 사용료 가격을 전보다 낮게 책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이통 3사는 경매를 통해 확보한 주파수 할당대가로 1조1265억원, 전파 사용료로 2384억원 등 총 1조3659억원을 정부에 냈다.
과기정통부는 주파수 할당대가나 전파사용료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할 사항이라 자체적으로 인하 약속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통사들이 통신비 인하 대책에 협조적이라면 기재부에 요구를 전달해주는 명분이 생길 수 있다.
이통사로선 이도 저도 섣불리 택하기 곤란한 상황이다. 반대 태세를 완화하려 해도 이통사업이 정체기에 들면서 통신비 인하 대책은 정부 압박을 넘어 경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당장 2분기 실적에서 이통사들은 수익성 정체를 나타냈다. 올해 2분기 별도기준 영업이익은 SK텔레콤이 4623억원, KT 3014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3.3%, 6.4% 감소했다. LG유플러스만 2105억원으로 15.9% 늘었다.
무선 매출을 살펴보면 SK텔레콤은 1년 전보다 0.7% 소폭 증가한 2조7014억원을 기록했다. KT는 5.2% 감소한 1조7814억원을 나타냈다. LG유플러스는 3.2% 성장한 1조4016억원이었다.
이통사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라면서도 “선택약정 요금할인 상승이나 기존 가입자들에게도 할인 적용을 하는 것은 통신사 혼자 통신비 인하 책임을 진다는 힘든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뉴스웨이 김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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