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예술이다” 혼 전파만성적자 대한항공 인수해종합물류기업 완성 밑바탕
이러한 경영 철학은 조 회장이 한진그룹을 육·해·공 종합물류기업으로 완성하는 동안 밑바탕이 됐다. 특히 신념과 창의로 수송분야를 개척하면서 사업을 예술로 승화시킨 기업인으로 꼽힌다.
1920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중훈 선대회장은 25세의 나이에 트럭 한 대를 마련해 무역업과 운수업을 목표로 1945년 한진상사를 설립했다. ‘한진(韓進)’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사업을 통해 우리 민족을 잘 살게 하겠다는 조 회장의 신념이 반영됐다.
창업 5년만인 1950년, 한진상사는 트럭 30대, 종업원 40명, 화물운반선 10여척을 보유한 중견 화물운송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조 회장은 폐허 속에서도 회사 재건에 몰두 했다. 그간 다져놓은 신용으로 투자자들에게 무담보 대출을 받았으며 옛 단골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평소 “사업은 지고도 이기는 것이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라는 말을 즐긴 조 회장의 신념은 1956년 일화로 확인 할 수 있다.
당시 어느 트럭회사로부터 임차한 차량의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겨울파카 1300여 벌을 차떼기로 남대문 시장에 팔아 넘긴 사고가 발생하자 조 회장은 도난 당한 물건이 사장에서 유통되면 전부 사들이도록 했다. 이로 인해 금전적 손해는 컸지만 미군들로부터 확고한 신용을 인정받게 됐다. 3만 달러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용을 얻은 셈이다.
이를 계기로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따냈고 이후 가용차량이 500대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를 토대로 1961년 주한미군 통근버스 20대를 사들여 서울~인천간 좌석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한진고속의 시초다.
대한항공 인수는 조 회장의 사업보국 의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당시 조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간곡한 권유로 만성적자를 보이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를 결정했다.
대한항공공사는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중 11번째가는 부실 항공사였다. 금융부채만 27억원에 달했다. 보유 항공기는 8대, 그 마저도 DC-9제트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명이 다한 프로펠러 비행기였다. 이에 임직원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조 회장을 말렸다.
하지만 조회장은 ‘수송은 인체의 혈관과 같다’는 평소 신념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결정했다.
이후 대한항공의 성장은 조중훈 회장의 ‘신용’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조중훈 회장에게 있어 신용은 최고의 자산이기도 했다. 이러한 창업주 정신을 이어온 결과 한진그룹은 지주사 전환으로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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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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