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전직 관료와 보험학자로 구성된 과반수 사외이사들의 판단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만기환급(상속만기)형 즉시연금 과소 지급 고객들에게 상품 가입설계서상의 최저보증이율 적용 시 예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미지급액을 일부 지급키로 했다.
약속한 최저 이율을 적용했을 때보다 적게 지급한 연금만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법원에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법적인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이사회는 법원의 판단과는 별개로 고객 보호 차원에서 해당 상품 가입 고객에게 제시된 가입설계서상의 최저보증이율 적용 시 예시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검토해 집행할 것을 경영진에게 권고했다”고 말했다.
이는 모든 가입자에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하지 않고 계산한 미지급액을 전액 일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일괄 구제 원칙을 수차례 강조해 온 윤석헌 금감원장에게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이다.
윤 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일괄 구제가 안 될 경우 일일이 소송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행정의 낭비도 굉장히 많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실효되는 상황도 있어서 일괄 구제로 가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삼성생명 이사회는 현성철 사장 등 사내이사 3명과 김두철 상명대 부총장 등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도 전직 관료와 보험학자로 구성된 사외이사진의 판단이 일괄 지급 거부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4명의 사외이사는 이사회 내 6개 위원회 중 현 사장이 위원장인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제외한 5개 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이사회 의장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성균관대 총장을 역임한 김준영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맡고 있다.
또 다른 사외이사인 강윤구(행시 16회)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는 보건복지부 차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직을 수행했다. 허경욱(행시 22회)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OECD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를 역임했다.
이사회 내 내부거래위원회 위원장과 감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두철 상명대 부총장은 금감원 생명보험 분쟁조정위원과 한국보험학회 회장을 지낸 보험전문가로 유일한 비(非)관료 출신이다.
사외이사들 가운데 보험업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김두철 사외이사의 경우 보험의 기본 원리 자체를 무시한 금감원의 요구에 반대의 뜻을 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 A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을 지급토록 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모든 가입자에게 미지급액을 일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2012년 9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한 A씨에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 연금을 지급했으나, 상품의 약관에는 연금 지급 시 해당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보험상품 판매 시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에서 사업비 등을 떼는 보험의 기본 구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반발해왔다.
뉴스웨이 장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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