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새한자동차 인수 현대차와 양대 산맥한국 최초 경차 ‘티코’ 출시···글로벌 시장 진출도 독자개발 신차 3종 히트, 현대차 누르고 판매 1위그룹 해체로 법정관리행···GM 인수에도 명맥 유지한국지엠으로 사명변경 ‘대우’ 브랜드 33년만에 종식
김 전 회장은 국내 최초의 경차인 대우자동차 ‘티코’를 선보이며 마이카 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세계경영’을 천명한 그는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대우자동차는 1955년 설립된 신진공업을 모태로 한다. 김 전 회장은 신진공업 초기 창립자가 아니다. 신진공업은 몇 차례의 주인이 바뀌는 수난을 겪은 뒤 1987년 대우그룹 품에 안겼다.
신진공업은 설립 초반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기보단 미군 차량을 개조해 파는 공업사에 불과했다. 신진공업은 1965년 일본 토요타 지분을 끌여들어 닛산 ‘블루버드’를 조립, 생산하던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했고 사명을 신진자동차로 바꿨다.
신진자동차는 이듬해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새나라자동차 조립라인에서 토요타와 기술제휴로 코로나 등 세단과 픽업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72년 토요타가 철수를 선언하면서 신진자동차는 지분 50%를 인수한 미국 GM과 합작사 ‘GM코리아’로 새롭게 탄생했다. GM코리아는 쉐보레1700, 카미나 등 승용차와 중형 GMC-C시리즈 트럭 등을 양산했다.
하지만 오일쇼크, 현대차 공세 등에 밀리면서 1976년 산업은행 관리체제로 넘어갔고, 사명을 새한자동차로 변경했다.
김 전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산은으로부터 새한자동차 지분을 인수했다. 대우와 GM의 50대 50 합작사가 탄생하면서 대우차의 역사는 시작됐다.
대우차는 출범 이후 80년대 초 고급 중형 세단인 ‘로얄 살롱’ 시리즈와 1986년 소형 스포츠 세단 ‘르망’ 등으로 연속 히트를 치며 현대자동차와 함께 양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특히 1991년 출시한 티코는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 정부는 88올림픽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에 맞춰 자동차 보급 계획을 추진했고, 대우차를 국민차 사업 생산업체로 지정했다.
일본 스즈키의 경차 ‘알토’를 기반으로 개발한 티코는 초소형 차량으로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연비가 강점이었다. 출시 초반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90년 중반부터 본격화된 세컨트카 인기가 커지면서 수요가 늘었다. 또 1997년 IMF 금융위기로 실속 소비 성향이 두드러지면서 티코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아토즈’, ‘비스토’를 선보이며 경차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국내 경차 시대를 연 티코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1992년 GM과 결별을 택했다. GM이 개발한 차량을 판매하면서 높은 가격의 부품과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탓이다. 또 고유 모델 개발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있었다.
김 전 회장은 곧바로 ‘세계경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필리핀, 폴란드, 중국, 루마니아, 러시아, 인도 등 10여개국에 해외 공장 설립을 추진했다. 국내에서는 1996년 수출선적이 유리한 군산산업기지 내에 생산기지를 세웠다.
특히 군산공장 가동을 기점으로 대우차 위상은 달라지게 된다. 김 전 회장은 독자 기술을 개발하기보단, 외부에서 검증된 기술을 사오는 방식으로 사세를 불려왔다. 하지만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우차가 내놓은 첫 고유 모델은 1990년 중형 세단 ‘에스페로’는 대우차의 첫 고유 모델이다. 에스페로는 로얄 시리즈를 잇는 2000cc급 엔진으로 개발됐는데, 준중형급이면서도 중형급의 큰 차체로 시장의 호평을 받았다.
자신감이 붙은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기술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라노스’(소형), ‘누비라’(준중형), ‘레간자’(중형) 3개 모델을 동시에 출시하며 연속 대박을 터트렸다.
특히 누비라는 김 전 회장이 ‘세계를 누벼라’는 의미로 명명한 순 우리말 차명으로, 서유럽에 수출되며 한국산 자동차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신모델 인기에 힘입은 대우차는 출범 15년만인 1998년 현대차를 누르고 국내 판매량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무리한 투자와 리스크 관리 실패로 외환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모그룹인 대우그룹이 경영위기를 맡게 되자 대우차는 오히려 투자를 강화하며 회생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쌍용자동차 인수와 티코 후속모델인 ‘마티즈’ 출시로 반전을 꾀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룹 전체가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계열사 대부분을 매각됐고, 결국 2000년 그룹 해체를 맞았다. 대우차 역시 2000년 11월 최종부도 처리되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미국 포드가 대우차 인수를 놓고 저울질하기도 했지만, 최종 주인은 GM이 됐다.
GM은 승용차 부문만을 떼서 인수했고 2002년 사명을 ‘GM대우’로 바꾼다. 버스 부문은 영안모자가 인수해 ‘자일대우버스’로, 트럭 부문은 인도의 타타그룹이 인수해 ‘타타대우상용차’로 이름을 변경한다.
GM대우는 ‘대우’ 브랜드를 사용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자체 개발하던 중형 세단 ‘올 뉴 말리부’와 준준형 세단 ‘라세티’는 GM 산하에서 출시됐다.
하지만 2011년 GM대우가 공식 명칭을 지금의 ‘한국지엠주식회사’로 변경하면서 쉐보레 브랜드를 전면 도입했고, ‘대우’ 브랜드는 33년 만에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대우차는 한국 자동차 산업 태동기부터 활약하며 현대차와 쌍두마차 역할을 한 업체”라며 “법정관리와 GM 인수 등을 거쳐 국산차 이미지가 많이 희석됐지만, 김 전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차 위상을 알리는 발판을 쌓았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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