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5명 대우실업 시작 재계 2위 성장 ‘세계경영’ 외치며 글로벌 진출 선봉에 서아시아 기업인 최초 ‘국제기업인상’ 수상
경기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은 학창시절 신물배달, 열무, 냉차 장사를 하며 동생들을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철, 정주영 등 1세대 창업가와 달리 김우중 전 회장은 연세대학교 졸업 후 1960년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1966년까지 6년간 한성실업에서 근무한 김 전 회장은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함께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하며 ‘샐러리맨 신화’를 쓰기 시작한다.
대우는 대도섬유의 ‘대’와 김우중의 ‘우’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충무로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시작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동남아에 의류 원단을 내다 팔며 ‘대박’을 터트렸다. 설립 첫해 트리코트(tricot, 경편직 메리야스 편물) 한 품목만으로 당시 우리나라 전체 트리코트 수출의 11.2%에 달하는 58만달러 수출에 성공했다.
대우실업은 이후 1969년 원단 염색·가공 시장에 진출했으며 같은 해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1971년 내쇼날의류 신설, 1972년 고려피혁, 1973년 쌍미섬유공업 인수를 통해 사세를 키워갔다.
1975년에는 종합상사로 지정되며 창립 10여년 만에 대우실업의 종업원 수는 100여명에서 5000명으로 늘어났다. 1976년에는 에콰도르에 진출했으며 1977년 수단, 1978년 리비아 등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며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1974년에는 대우전자, 1978년 대우조선공업을 설립했으며 1983년에는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바꿔달았다.
1980년대 들어서며 김 회장의 리더십은 더욱 두드러졌다.
1981년 ㈜대우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이듬해 대우그룹을 출범시켰고 기계,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 공업부터 전자, 통신 시장까지 진출하며 대우를 국내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1983년에는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수상해 주목받았다.
한편 김 전 회장은 당시 대우그룹이 초고속 성장을 이어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독차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두드러진 기업인 중 한명이다.
재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회장의 부친이 대구 사범 은사라는 것을 알게된 이후 두 사람이 절친한 사이가 됐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를 앞당긴 기업인으로도 유명하다.
1989년 발표해 6개월만에 100만부를 돌파한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해외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인 김 전 회장은 1993년 ‘세계경영’을 공식 선포하고 해외사업체 설립에 집중했다.
그는 ㈜대우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미국 등 선진국부터 발전초기의 개발도상국까지 가리지 않고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신시장 개척에 앞장섰다.
이 같은 노력에 1998년 대우는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갖춘 자산총액 76조원의 재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승승장구하던 김 전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대우가 유동성 위기를 맞으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우는 1년간 40개였던 계열사를 10~15개로 줄였고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알짜’로 불리던 힐튼호텔을 매각했으나 1999년 8월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에 돌입하며 결국 해체했다. 김 전 회장도 1999년 11월 1일 사퇴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김 전 회장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20조원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8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2014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을 많다’에서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가 경제관료들의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 등을 오가며 2012년부터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인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GYBM)에 매진한 그는 1년여 투병 끝에 지난 9일 향년 83세로 생을 마감했다.
뉴스웨이 이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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