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 ‘고객 가치’ 최우선1982년 美 컬러TV 공장···최초 해외 생산 기지
재계에선 국내 최초로 해외 공장을 설립해 세계화를 주도했으며 이를 통한 기업 경영의 질적인 성장 사례를 끊임없이 제시한 선구자로 높이 평가한다.
그가 강조한 ‘자율과 책임경영’은 이러한 넓은 시각을 기초로 하며 ‘고객 중심 경영’은 지금까지도 LG가 최우선에 꼽는 놓칠 수 없는 가치다.
1970년 2월 그룹의 모체 기업인 락희화학이 대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이후 그의 시선은 세계화로 향했다.
구 명예회장은 다른 기업들보다 한발 앞서 우리나라 기업의 활동 지평을 세계로 확장했다. 재임하는 동안에만 50여 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특히 1982년 미국 알라바마주의 헌츠빌에 컬러TV 생산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설립된 해외 생산기지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금성사 헌츠빌 공장 설립에 대해 “한국의 기업이 이제는 미국 사회에서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도 성공적인 해외 진출 케이스로 헌츠빌 공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구 명예 회장은 독일의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선진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습득할 수 있었고 LG는 세계의 중앙으로 활동 무대를 과감하게 확장시켰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럭키그룹은 두 가지 면에서 합작의 명분을 찾아왔다. 하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럭키그룹의 독특한 기업풍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서로 믿고 존중할 줄 아는 조직 문화, 거슬러 올라가면 그룹의 모태가 된 ‘인화(人和)’에 그 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로에게 합당한 원칙을 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상호 신뢰를 얻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많은 합작법인을 운영하면서도 파트너와의 분쟁이 없이 합작사업의 국제적 모범을 보였다.
대표적인 합작 사례로는 1966년부터 시작된 호남정유와 미국 칼텍스의 합작을 꼽을 수 있다. 50대 50의 대등한 비율로 경영을 양분했음에도 상생과 조화라는 합작의 기본을 존중하고 원칙을 공정하게 지키면서 한치의 잡음 없이 합작경영을 이어왔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1970년대 초반에 두 건의 화재 사고를 겪으면서 칼텍스에 대해 커다란 신뢰를 했다. 1971년 호남정유가 입주해있던 건물에 불이나 중요 서류가 타버렸을 때 칼텍스는 사본을 제공하며 복원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1972년 여수 공장에서 화재가 났을 때는 칼텍스 측이 사전에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둔 덕에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화를 면했다.
1974년에는 금성통신이 외국과의 합작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기업공개를 했을 당시 합작 파트너였던 지멘스 측의 협조가 원활해 언론에서 합작사업의 모범 사례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지멘스와 합작은 선진기술을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많을 때는 10여명의 지멘스 기술자가 금성통신에 파견돼 1년 이상 머물며 금형기술을 전수했다. 또 가전부문에서도 라디오나 냉장고의 부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럭키그룹이 합작 사업의 좋은 선례를 남기면서 당시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 많은 외국기업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럭키그룹에 사전 자문을 구하러 오기도 했다.
컬러TV의 과감한 해외 진출도 빼놓을 수 없다.
컬러TV 생산은 1975년 구미 공단에 연산 50만 대의 대단위 TV 생산 공장이 준공되면서 본격화됐다. 구미 공장의 준공은 한국 전자 공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우리나라 전자 공업 발전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컬러TV는 국내의 컬러 방송 시기가 미정이라 국내 시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 명예회장이 글로벌 기술 흐름에 뒤쳐지지 않고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면서 전량을 미국 수출용으로 먼저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이후 우리나라 수출에서 가전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확대됐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며 “LG의 비약적인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한 분”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dori@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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