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이재용, 오너 경영체제 변화 구상스웨덴의 기업집단 발렌베리 가문 롤 모델삼성물산 실질적 지주사···‘금산분리’는 숙제시장 “조급하게 지배구조 바꿀 가능성 낮아”
이 부회장은 2009년 이혼한 대상그룹 장녀 임세령 전무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첫째인 아들은 올해 스물한살이고 둘째인 딸은 고등학생이다. 올해 이 부회장 나이가 만 51세인 점을 고려하면 삼성의 4세 경영 시대는 적어도 30년 이후에 도래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최근 이 부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영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졌던 오너 경영체제는 3대에서 막을 내리게 됐다. 이는 곧 이씨 성을 가진 삼성 공화국 시대의 대 변혁이 다가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결권자문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기다. 경영을 못하면 주주들이 경영자를 교체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삼성전자가 만일 경영 실패로 노키아, IBM처럼 밀려난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주주 요구로 교체될 수도 있고, 한진가처럼 형제(이재용·이부진·이서현) 간에 내분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의 눈은 ‘발렌베리’ 가문으로=‘삼성 3세’ 이재용 부회장이 총수 경영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하면서 재계에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방식에 관심이 쏠렸다. 한국 경제의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이 스웨덴의 기업집단인 ‘발렌베리’ 가문처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측하는 분석이 많다.
재계에서 예상하는 것 처럼 삼성의 롤모델이 될 스웨덴의 발렌베리가문은 5대에 걸쳐 지주회사인 인베스터AB 아래 가전회사 일렉트로룩스, 통신사 에릭슨, 항공사 사브 등 100여개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모든 지분은 발렌베리재단이 갖고 있으며 5대 총수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은 재단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지만 배당이익 일부는 회사 성장에 지원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삼성과는 이건희 회장 때부터 인연을 쌓았고, 이 부회장은 지난해 방한한 마르쿠스 회장과 서울 모처에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오래 전부터 총수 경영은 3대에서 끝내겠다는 생각을 주변 지인들에게 종종 말했다는 전언이 줄을 잇는다. 다만, 재벌 중심의 한국 사회가 외국의 선진기업처럼 바뀔 가능성에 아직은 물음표(?)가 붙는 게 사실이다.
삼성 한 관계자는 “발렌베리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국가가 나서서 지원을 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 환경이 달라 발렌베리가문처럼 소유와 경영의 완전 분리가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고민···이재용 부회장 어떤 해법 내놓을까?=삼성의 주력회사인 삼성전자는 삼성생명이 지분 8.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이 19.3% 지분을 갖고 지배한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지분 17.1%를 보유한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이건희 회장 일가다.
삼성의 경우 지주사로 전환을 하지 않아 금융 계열사 보유가 가능하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그룹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 10%를 갖고 대주주로 올라있어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이 약 5%에 불과함에도 지배력 유지가 가능한 상태다.
다만 금융사의 ‘간접지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규제 당국의 압묵적 압박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난제로 꼽힌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방법이 있으나 두 회사의 지분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0조원의 막대한 현금이 필요한 만큼 자금부담이 상당하다. 이에 재계에선 현 지배구조에서 삼성이 지주사 전환 등은 당장 추진하긴 쉽지 않다는 해석이다.
무엇보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생성된 신규 순환출자를 지난 2016년 2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2.6%를 처분하며 해소했다. 이와 함께 현행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은 대기업 계열 금융사들이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10%만 넘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아 현재 삼성의 지배구조가 법률을 위반하는 것도 없는 상태다.
시장에선 추가적인 삼성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지주사로 반드시 가야 한다면 삼성전자의 지분 확보 부담이 없는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가능성은 제기됐지만, 계열사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섣불리 추진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A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에 팔 순 없고 결국 계열사에서 사들이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 “코로나19로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계열사 사이에 지분을 넘기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시가 총액이 이미 300조원을 넘긴 만큼 이재용 총수 일가가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크게 확대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상장사들은 상속 이슈가 있어 시간이 지나면 오너의 지분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장기적으로 한국 재벌의 소유와 경영은 자연스레 분리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증권가에선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 받으려면 약 9조원의 상속세를 내야 할 것으로 평가한다. 이 회장의 보유한 두 회사의 지분가치는 총 14조8000억원 규모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경영 승계 과정에서 과도한 상속세 등으로 지분이 희석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기업들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며 “재벌은 전통적인 주주로 남아 배당만 받고, 회사를 혁신하고 성장하는 전문경영인이 오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재용의 이례적 선언···재계 파장 확산=삼성이 총수 경영체제에 마침표를 찍으면 다른 대기업들도 영향권에 들어설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다른 재벌 기업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이 부회장의 이례적 선언에 상당히 난감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 재벌들은 할아버지 때 창업한 가업을 이어받아 3세 경영자들이 회사에 애착이 남다르다”며 “주인의식이 약한 전문 경영인체제보다는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오너 경영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과 뿌리가 같은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해외에서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한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아 재계 안팎에선 만일 경영 승계를 하면 상당히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CJ는 이재현 회장이 탈세 혐의 등으로 구속됐을 시기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동한 적 있다. CJ는 삼성이 변화를 추진하면 전문경영인 시스템을 폭넓게 안착시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그룹사 중 한곳이다.
그룹 순위 2위를 노리고 있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도 경영권을 자녀에게 대물림 안할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꼽힌다. SK그룹의 사회적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최 회장이 오너 경영체제에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계 점쳐진다.
재계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이 나온 직후 재계에선 소유와 경영 분리는 앞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식으로 가지 않겠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며 “삼성의 변화는 다른 그룹의 후계 구도에서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지숙 기자
jisuk618@newsway.co.kr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lennon@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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