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 질문에 정 명예회장 회상, 눈시울 적셔정 이사장, 재단 운영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현작년 사장으로 승진한 3세 정기선 부친 옆지켜아산 韓 '산업史' 역군, 기업가 정신 되세길 때"쌀가게 배달로 시작 우리나라 경제 발전 이바지"
정몽준 이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 50년을 맞아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향한 눈물의 사부곡을 썼다.
지난 19일 뉴스웨이는 경기도 인근에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 선영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정몽준 이사장과 그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을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사전 약속 없이 갑작스레 성사된 인터뷰다. 정 이사장에게 부친과의 추억, 자신의 열정, 대한민국 조선史가 모두 담긴 반세기 현대중공업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1년의 시간이 지난 가운데 어느새 일흔이 넘어 노신사가 된 정 이사장 특유의 여유로움과 멋스러움은 여전했다.
뒤를 따르던 정기선 사장 역시 'MZ세대'를 대표하는 수장답게 스마트한 이미지가 강했다. 정 사장은 조부(정주영), 부친(정몽준)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춘 CEO로 평가받는다. 정 이사장의 시선은 늘 아래로 향해 있다. 그의 전철을 따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며 복지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 정주영 회장, 그리고 현대중공업에 대한 과거의 시간을 가졌다.
정 이사장은 비를 맞고 서 있는 기자에게 자신의 우산을 기울이며 "(아버지를) 잊지 않고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와 고맙다"며 먼저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이는 대한민국 산업사(史)의 역군인 아산 정주영 회장과 그의 기업가 정신이 시간이 흘러 대중들에게 점차 잊혀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자 안타까움의 뜻으로 읽혀진다.
그는 부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정 이사장은 자서전을 통해 "아버지는 커다란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 열정은 타인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타오르면서 자신을 밀고 가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담담하게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열정이었다"고 언급할 정도다.
정 이사장은 이곳 선영에 대한 질문에 아버지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이 생각났는지 한동안 침묵하다가 인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예전에 이곳은 아주 시골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버님이 여기를 매입하셨다. 인근 지역이 비포장 도로여서 당시 살던 장충동 자택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2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도시가 됐다"며 옛 생각에 잠겼다.
이어 "이곳은 원래 과수원이어서 대나무, 감나무가 많았다"며 "결혼 전에는 부모님 모시고 , 결혼해서는 아이들이 대학가기 전까지는 이곳을 캠핑하러 자주 찾았다"고 회상했다. 아버지의 이 말에 옆에 서 있던 정기선 사장 역시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이 났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현대가(家) 선영에는 정주영 회장과 그의 아내 변중석 여사의 묘가 안장돼 있다. 범 현대 일가는 물론 각 계열사 사장단은 기일 전 이곳에 들러 고인들을 기린다.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참배 규모는 크게 줄었지만 장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포함한 범현대 오너 일가들은 기일 전 선영에 참석해 정주영 명예회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 50주년에 대한 감회를 묻는 질문에도 역시 아버지 정주영 회장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아버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쌀가게 배달부터 시작했지만, 기업가가 되고 나선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오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현대중공업이라는 기업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었다"며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 하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이 세계 정상의 조선사로 성장하는 데 있어 많은 이들의 피와 땀, 노력이 서려 있지만, 결국 아버지의 도전과 열정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어하는 의도가 역력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생전, 6남인 정몽준 현(現) 아산재단 이사장을 가장 예뻐했다고 한다. 서울대를 나온 유일한 아들인 데다 아버지인 본인에게 자신의 술집 외상값을 씌울 정도로 배포가 두둑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형제들 중 가장 빠른 31살에 현대중공업 사장에 오른 것만 봐도 정 이사장에 대한 정주영 회장의 애정과 믿음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정몽준 이사장이 펴낸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극찬했다. 정 이사장도 MIT대 석사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이 기업경영이념으로 그에게도 애착이 깊다. 그는 1982년 1월 이 책을 출간하자마자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들고 갔고 아산은 머리말만 읽은 뒤 "정말 잘썼다"며 극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이사장의 기업경영이념은 시장경제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인식 위에 기업경영자들이 유념해야 할 가치인식과 행위규범,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룬 경영서적이다.
그런 정 이사장에게도 아버지는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를 따라 정치에 입문했고, 아버지의 못다한 꿈 '대권'에도 도전했다. '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했던 아버지처럼 그 역시 '2002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유치시켰다.
정 이사장은 부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자서전인 <나의도전 나의열정>에 "아버지는 커다란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 열정은 타인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타오르면서 자신을 밀고 가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담담하게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열정이었다"이라고 회상했다.
다만 '소유와 경영 분리'라는 자신만의 확고한 이념 아래, 2002년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뼈 속까지 기업인'이었던 아버지와 결을 달리했다. 그러나 그 역시 현대중공업 사장 등을 역임하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을 오늘날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정 이사장은 경영에 손을 뗀 이후에는 현대중공업이 국민들에게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는데 크게 기여했다. 휴대폰, 자동차 등을 판매하는 사업과 달리, 조선업·중공업은 사업 특성상 대중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갖기 어렵다. 무려 7선의 국회의원, 국제축구연명(FIFA) 부회장이라는 그의 대중적 지위는 현대중공업을 국민들에게 보다 친근한 기업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다.
정 이사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그 순간 까지도 연신 기자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정기선 사장 역시 허리 굽혀 인사하며 계속해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코로나 악수도 청했다.
떠나는 정몽준 이사장의 뒷모습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이 오버랩 됐다. 여느 재벌가에선 보기 힘든 인간미, 겸손함, 예의바름. 이 고루하기 짝이 없는 현대가(家)의 전형이 '현대'의 저력으로 발휘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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