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현대건설, 2007년 이후 15년 만에 도시정비 맞대결각사 최고위급 임원, 직접 현장 챙겨···자존심 대결 양상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11월2일 입찰을 마감하는 울산 중구 B-0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물밑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각 사의 주택부문을 총괄하는 본부장급 인사가 직접 현장을 챙길 정도로 관심이 크다.
B-04구역은 울산 중구 교동 190-4번지 일원에 지하 4층~지상 29층 55개 동 4080가구를 짓는 재개발 사업이다. 대지면적이 17만 2297㎡에 달하고 공사비만 1조원 규모, 사업비는 약 2조원이 투입되는 매머드급 단지다.
◆삼성 김상국 vs 현대 김태균, 각사 '주택사업통' 자존심 대결
업계에서는 B-04구역 수주전이 건설업계 1등을 가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본다. 삼성물산은 재계 1위와 시공능력평가 1위라는 '브랜드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도시정비사업 분야의 공백기가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3년 간 도시정비사업 수주 1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결보다는 수의계약 위주로 사업을 수주했기 때문에 '독보적 강자'를 논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실제로 두 업체는 최고위급임원이 직접 B-04구역 사업을 챙기면서 승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각사의 주택부문을 이끄는 수장들이 직접 나서면서 '자존심 대결'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삼성물산에서는 김상국 주택본부장(부사장)이 현장을 직접 챙기고 있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배포한 홍보물에 직접 수주의지에 관한 글을 싣는가 하면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상국 부사장은 영남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뒤 삼성물산에 입사해 분양사무소장, 주택마케팅팀장, 분양팀장, 주택영업팀장 등을 거친 '주택통'이다. 2020년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3주구 재건축 사업 수주가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현대건설도 김태균 주택사업본부장(전무)이 전면에 나섰다. 김 전무는 지난 8월 공식 일정으로 울산 B-04구역을 방문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입찰제안서 준비를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무는 현대건설 입사 후 주택건설 현장소장으로 현장 경험을 쌓았고, 감사팀과 예산팀을 거쳤다. 임원이 된 후에는 주택사업관리실장, 도시정비영업실장을 역임했다.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과 서초구 반포1·2·4주구 재건축 사업 수주를 주도했다.
◆경쟁 피하던 업계 1‧2위, 15년 만의 맞대결···왜 하필 울산에서?
맞대결을 피하던 도시정비업계에서 시공능력평가 1‧2위의 업체가 고른 맞대결 현장이 울산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번에 경쟁입찰이 성사되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2007년 이후 약 15년 만에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실제로 최근 정비업계에선 대형건설사 간 맞대결이 거의 사라졌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공사를 선정한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120곳 가운데 88%(105곳)이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했다. 경쟁이 이뤄진 곳은 15곳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도 아닌 지방 광역시에서 대결이 펼쳐진 배경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크다.
현대건설 입장에선 울산이 창업주인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때부터 지금까지 긴 인연을 이어온 '앞마당'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울산은 정주영 회장이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해 우리나라의 첫 자동차인 코티나와 첫 고유 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생산했던 곳이다. 현대건설이 속한 현대자동차그룹의 뿌리와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도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지었다. 지금도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家)의 공장과 협력업체가 다수 포진해있다.
삼성물산은 울산이 '현대그룹의 도시'라는 점을 역으로 치고 들어간다는 전략이다. 울산에는 범 현대가가 지은 ▲현대홈타운 ▲힐스테이트 ▲아이파크가 많다. 반면 삼성물산의 '래미안'은 2004년 지은 약사동 1~4단지가 유일하다. 4000가구 규모의 래미안이 들어서면 희소성이 클 수밖에 없다.
한동안 울산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B-04를 대체할만한 대규모 사업이 없다. B-04구역은 지방에서는 드물게 사업비가 조 단위가 넘어가는 단지다. 울산 내에선 당장 비슷한 규모의 사업장이 없다. 경상권으로 확대해도 보기 드문 매머드급 단지다. 현대건설에서 울산 최초로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내세운 이유다.
실적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대건설은 올해 도시정비사업에서 누적 수주액 8조352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공사비 1조가 넘는 B-04구역을 수주하면 우리나라 건설업계 사상 첫 10조원 수주를 바라볼 수 있다. 삼성물산은 오는 29일 흑석2구역 시공사 계약을 맺으면 올해 약 1조3000억원 수주잔고를 기록하게 된다. 10대 건설사 중 최하위다. B-04구역을 수주하면 단숨에 5위권으로 진입할 수 있다.
◆입찰 후엔 홍보제한···물밑 사전홍보 과열 양상
클린수주를 내세워온 삼성과 현대가 맞대결에서도 점잖은 척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그동안 두 업체 모두 업계에서 상위권의 선호도를 가진 브랜드를 앞세워 손쉽게 승부를 결정지었는데, 두 업체가 맞붙는 상황에선 여유를 부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업체 모두 입찰참여를 사실상 확정하면서 물밑 홍보를 벌이고 있다. 조합이 개별홍보를 금지하고 있지만, 입찰제안서와 홍보지침 준수서약서를 내기 전이라 양사의 임직원들이 간접 홍보 방식으로 조합원 민심 잡기에 한창이다. 입찰 마감 이후에는 홍보활동에 제약이 많아, 양사 모두 입찰 마감일인 11월2일 전에 민심잡기를 끝내겠다는 의도다.
조합에선 두 업체의 과열 홍보를 경계하는 모양새다. B-04구역 조합 관계자는 "조합은 합동홍보설명회와 지정 홍보관 외에 장소에서 홍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1회 적발만으로도 입찰 자격을 박탈한다는 방침"이라면서 "공정경쟁을 통해 우수한 제안서를 낸 업체가 시공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뉴스웨이 장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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