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전·디스플레이 업계, 허리띠 졸라매SK하이닉스, 내년 투자 금융위기 수준으로 LGD, 시설투자 1조 감축···가전업계도 긴축삼성, 수익성 개선 주력···LG전자는 위기 대응
내년에도 시장 전반의 분위기는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질 조짐이다. 기업들은 이미 감산과 투자 축소를 결정하며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이상호 전경련 경제정책팀장은 "기업들 자금 사정이 안좋다. 기업들이 직접 금융 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하기가 어렵고, 은행권 대출도 여의치 않아 제2금융권 변동 대출 중심으로 단기 자금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내년에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투자를 보류 또는 철회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SK 반도체, LG디스플레이 투자 축소 현실화=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는 긴축 경영에 나선다.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감산과 투자 축소를 고려하지 않았지만 SK하이닉스는 투자를 절반이나 줄이기로 했다. 적자 기업인 LG디스플레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TV가 안 팔리니 패널 재고는 쌓이고 가격도 줄어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내년 업황도 부정적이라 양사의 '한숨'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3분기 영업이익이 60% 하락한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액을 50% 줄이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부문 사장은 3분기 실적발표 이후 "금융위기 시기인 2008~2009년 CAPEX(설비투자)에 버금가는 투자 축소"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SK하이닉스의 올해 투자 규모는 약 19조원이다. 이를 고려하면 내년 투자액은 9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현재 반도체 경기를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가 3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국내 반도체산업 경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반도체산업이 처한 상황을 '위기'라고 진단한 비율은 76%에 달했다. 반면, '위기상황이 아니다'라는 답변은 3.3%에 그쳤다. 또 위기로 진단한 전문가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현 상황이 내후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전망과 관련한 질문에 "삼성은 투자를 지속해 매출, 수익이 줄더라도 시장이 회복되면 이를 만회하고 SK하이닉스는 손실이 커지면 기업 운영에 부담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업황은 수요 산업이 살아나야 회복될 것"이라면서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예상 TV 출하량은 지난 10년 동안 가장 낮은 2억200만대로 전망됐다. OLED TV 시장도 6년 만의 역성장이 예고된 상황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이 인플레이션과 러·우 전쟁,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 폐쇄, 가뭄까지 겹치면서 출하량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형 OLED 패널을 생산하는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선 악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OLED는 가격 경쟁력도 위축된 상태다. 트렌드포스는 "55인치 OLED와 LCD 패널 가격 차이가 1년 만에 1.8배에서 5배로 확대되면서 LCD TV의 판매가가 20~25% 인하됐다"고 설명했다. 전체 TV 시장에서 차지하는 OLED TV 비중은 한 자릿수에 불과한데 패널 간 가격 차이가 크다 보니 LCD TV가 비교 우위에 있는 셈이다. 선호도가 높은 55인치 TV의 LCD 패널값은 지난달 96달러를 기록해 작년 대비 약 60달러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2~3분기 누적 적자만 1조2000억원 이상 쌓인 LG디스플레이도 비상경영에 나선다. 김성현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TV용 LCD 패널은 국내 7세대(1950×2220㎜) 생산 종료 계획을 앞당기고 중국 내 8세대(2200×2500㎜) 생산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며 "OLED로의 구조 전환을 더 빨리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설비투자는 연초계획 대비 1조원 이상 축소하겠다"고 덧붙였다.
OLED 시장은 내년에도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2023년에도 큰 폭의 출하 증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러·우 사태로 유로존 에너지 요금 급등에 따른 실질 구매력 감소가 OLED TV 수요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OLED TV 시장 확대를 주도했던 LG전자, 소니 등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세트 가격 인하 전략이 불가피해 출하를 증가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TV·가전 "내년 상반기까지 어렵다"=가전 업계는 고정 비용 증가 요인으로 수익성 부진이 심해졌다. 수요 부진에 업체별 경쟁 심화로 인한 마케팅 비용 상승은 결국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4분기에도 소비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수익성 부진이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IT·세트 수요 감소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비우호적인 영업환경이 지속될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삼성전자는 TV 사업을 하는 영상디스플레이(VD) 및 생활가전 사업부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2500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67% 급감했으며 전분기(영업이익 3600억원)와 비교해도 30% 감소했다. 수익성만 놓고 보면 지난 4년간 분기 기준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가전 사업 수익성 둔화는 수요 감소와 비용 증가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재료비와 물류비 부담은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시장에서는 삼성 TV 및 가전 사업은 3분기 바닥을 찍고 개선 여지가 높다는 관측이다. 삼성은 연말 성수기 프리미엄 수요 선점과 비용 효율화로 수익성 개선에 주력하기로 했다. 다만, 올레드 TV 사업은 여전히 속도가 나지 않다는 게 걸림돌로 작용한다. 내년에도 삼성 TV 출하량 전체에서 올레드 TV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도 못 미칠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계획은 경영진이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12월초 사장단·임원 인사 이후 진행될 하반기 글로벌전략회의를 통해 TV 및 가전사업 점검에 들어갈 예정이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전자 계열사는 TV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사업이 적자를 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부터 내년 사업계획 등을 점검하는 사업보고회를 진행했다. 적자 사업군은 위기 대응 전략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TV 수요 침체로 HE사업부문의 적자 폭이 2분기 190억원에서 3분기 550억원으로 더 커졌다. 시장에서는 3분기보다 4분기 TV 사업의 실적이 더 악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연말 카타르 월드컵 효과는 크지 않을 거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LG전자의 경우 오히려 재고를 줄이기 위해 판촉비, 마케팅비 등이 증가해 TV 사업은 적자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시장 분석가들은 LG 생활가전이 4분기 450억~500억원가량 적자를 낼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LG전자는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사업환경 면에서 인플레이션 및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러-우 사태 지속, 유럽 에너지 위기 및 경기 위축 등 영향으로 향후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한금융투자는 내년 LG전자의 연결 영업이익을 올해보다 9% 감소한 3조5000억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약 4% 줄어든 3조7550억원을 제시했다.
TV는 내년 상반기까지 적자에 갇힐 가능성이 제기됐다. TV 및 가전 공장의 재고 조정을 위한 인위적인 감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 관계자는 "인위적인 감산 등은 상황을 보고 할텐데, 공식적인 숫자는 분기보고서나 연간 사업보고서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lennon@newsway.co.kr
뉴스웨이 김현호 기자
jojolove7817@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