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쑥쑥 크는데 전기차 성장세는 둔화저가 신차 출시·가격 인하로 일시적 반등 예고전문가 "전기차 시장 중장기 불확실성은 여전"
13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1~8월 기준)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0만3356대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71% 증가한 수치다. 일시적으로 뛴 3월(2만1874대) 판매량과 신차 출시에 따른 라인업 확대를 감안하면 사실상 역성장한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하이브리드차는 35.01% 급증한 18만2527대를 기록했다. 유가 상승으로 친환경 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시장만 급성장한 모양새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구매보조금 축소와 하이브리드차 대비 비싼 가격이 첫손에 꼽힌다. 보조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가격이 비싼 전기차는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의 판매가 생각보다 부진한 이유는 비싼 가격 때문"이라며 "보조금이 많을 땐 전기차의 성능이 가장 중요했지만 지금은 가격이 얼마나 저렴하냐에 따라 판매량이 결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델Y 9월 수입차 판매 1위···국산 저가 전기차도 잇단 출격
하지만 올해 4분기와 내년 상반기까지는 전기차의 판매가 일시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제조사들이 기존 전기차의 가격을 내렸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보급형 전기차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9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을 낮춘 테슬라 모델Y가 수입차 시장 베스트셀링카 자리에 올랐다. 모델Y의 월간 판매량은 4206대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3511대)를 695대 차로 제쳤다. 지난 7월 출시된 후륜구동 모델Y는 가격을 5000만원대로 인하해 국고보조금 전액을 받을 수 있다.
국산 전기차 중에선 KG모빌리티가 11월부터 판매하는 토레스 EVX가 선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토레스 EVX는 중형 전기SUV이지만 4750만~4960만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된다. 보조금을 받으면 30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어 사실상 가솔린 터보모델과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LFP배터리를 탑재한 토레스 EVX는 가격경쟁력을 높이면서도 LFP의 단점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는 433km로 NCM(니켈‧코발트‧망간) 전기차와 큰 차이가 없고, 배터리 보증기간은 국내 최장 수준인 10년/100만km에 달한다.
최근 출시된 기아 레이EV도 국내 전기차 보급의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레이EV는 이미 6000대 이상의 사전 계약을 기록하며 흥행을 예고한 경형 전기차다. 레이EV의 판매가격은 2775만~2955만원으로, 보조금을 받으면 지자체에 따라 10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전기차의 판매가격이 잇따라 내려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앞서 언급한 모델Y에 이어 폴스타2의 국내 가격도 15% 저렴해졌다. 보조금 전액 수령이 가능해진 폴스타2는 지자체에 따라 300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해졌다.
특히 정부는 전기차 판매 회복을 위해 제조사의 차량 할인 금액에 맞춰 보조금을 더 얹어주는 방식으로 국비보조금을 차등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최대 680만원이었던 국비보조금은 제조사의 할인 폭에 따라 최대 780만원으로 상향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발맞춰 아이오닉5와6, EV6의 판매가격을 각각 400만원, 484만원씩 연말까지 인하한다.
전문가 "보조금 정책 손봐야···원가절감 노력도 절실"
다만 일각에선 국내 전기차 시장의 판매 회복이 녹록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전기차의 가격이 낮아져도 여전히 하이브리드차 대비 가격경쟁력이 떨어져서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판매 촉진을 위해 보조금 정책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겸 한국전기차협회장은 "올해 4분기엔 전기차가 어느 정도 팔리겠지만 보조금이 더욱 축소되는 내년이 문제"라며 "전동화 전환은 탄소중립을 위해 필수적인 만큼 보조금과 인센티브 정책을 적극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충전인프라나 전기료 등 제반여건은 다른 국가 대비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보조금 확대와 더불어 전기차의 장점을 적극 홍보하는 캠페인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선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확대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제조사가 생산성을 높여 원가를 절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 김용현 한국폴리텍대학 부산캠퍼스 전기자동차과 교수는 "LFP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산 전기버스는 지난해 국내 시장의 42%를 장악했다"며 "국내 기업들이 정부를 압박해 보조금을 늘릴 게 아니라 자체적인 품질 혁신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유로7 규제 완화···전기차 보급 속도 지연 불가피
김 교수는 국내를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전체가 불확실성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중국과 신흥시장을 제외한 선진시장은 전기차 보급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서다. 유럽연합은 지난 9월 말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인 유로7을 현재 시행 중인 유로6 수준으로 유지하는 협상안을 채택했다. 미국 역시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전기차 보급 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중국산 전기차들이 유럽에 진출하고 있는데, 유럽 전기차가 중국차를 가격으로 이길 방법이 없다"며 "유럽은 자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각국의 전기차의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확보될 때까지는 하이브리드차와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교수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이 적기 때문에 자동차 공장 생산직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며 "따라서 공장 노동자들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트럼프가 바이든을 이길 경우 미국의 전기차 정책도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동화 전환이라는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각국의 정책변화 등으로 인해 전기차 대중화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들이 중국업체와 경쟁하려면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더 끌어올려야 하고, 당분간은 하이브리드차가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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