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결핵 백신 국산화 도전 결국 좌초탄저백신 26년 연구 끝 상용화 성공mRNA 백신 개발로 새로운 도약 모색
21일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의 품목허가를 승인받았다. 배리트락스주는 녹십자가 질병관리청과 공동 개발한 물질로, 이달 8일 국산 신약 39호에 이름을 올렸다.
탄저균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장기간 생존이 가능해 공기 중 살포가 용이한 1급 법정감염병으로 생물학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질병청은 생물테러 등 국가위기 상황 대비를 위해 1997년 탄저백신 후보물질 발굴을 시작으로 백신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 품목허가는 26년 만에 거둔 성과인 셈이다.
배리트락스는 2종의 탄저균 독소인자를 세포 내로 전달해 주는 방어항원(Protective Antigen, PA) 단백질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 낸 백신으로, 백신을 접종해 방어항원을 통한 면역반응을 일으켜 탄저병을 예방할 수 있다.
기존 백신은 세균 배양을 통해 만들기 때문에 미량의 탄저균 독소인자가 남아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데 이번에 개발한 백신은 단백질 항원을 기반으로 만들어 이런 부작용을 없앴다. 재조합 단백질 방식으로 탄저백신을 개발한 것은 세계 최초 사례다.
탄저균은 치명률이 높아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3상 시험이 수행되기 어렵다. 이에 질병청은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의 개발 촉진 및 긴급 공급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임상 3상 대체 동물 실험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동물모델에서 백신 4회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나도 높은 탄저 독소 중화 항체가가 유지됐고 탄저균 포자에 대해서도 높은 생존율이 확인돼 효과를 입증했다.
GC녹십자 관계자는 "GC녹십자는 탄저백신을 자체 생산 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어 정부의 필수 비축 수요량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날 BCG 백신은 국내 판매 계획이 철회됐다. 식약처에 품목허가 신청이 반려된 데 따른 조치다.
녹십자는 지난 8일 공시를 통해 약 16년간 추진해온 BCG 백신 국산화 사업을 공식 철회한다고 밝혔다. 당초 녹십자는 정부의 '결핵퇴치 2030계획'에 따라 87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BCG 백신의 국산화를 추진했다. 이 사업은 2009년 시작돼 전남 화순의 녹십자 백신공장 인프라를 활용한 생산시설 구축(2011년 완료), 기술도입 및 임상시험, 품목허가 신청, 자체생산까지 진행된 바 있다.
BCG 백신은 생후 1개월 내 모든 신생아가 접종해야 하는 필수 의약품이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 불안 문제 등이 꾸준히 지적됐다. 이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백신 국산화를 추진해 녹십자를 위탁사업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안정성 문제로 사업 시작 16년 만에 사업을 접게됐다.
녹십자는 "품목허가 신청에 대해 임상결과 유효성 평가지표에서는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으나, 임상적 유용성을 고려한 식약처의 반려 결정에 따라 국내 판매 계획을 철회한다"고 말했다.
임상적 유용성이란 숫자상 효과 외에 실제 환자 치료에 명확한 이점이 있는지를 따지는 개념으로, 안전성, 환자 편의성, 경쟁약이나 기존 치료법 대비 우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이번 허가 신청 반려는 식약처가 해당 백신에 대해 실제로 환자에게 의미 있는 건강상 이득(benefit)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식약처가 공개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녹십자의 BCG 백신은 안전성 관련 문제로 품목허가가 반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청 측은 아직 상용화 실패는 아니라는 입장으로, 업계에서는 추후 국내가 아닌 북한 등 저개발국가에 대한 수출용 허가를 고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상태다. 국내 허가를 포기한 BCG 백신 활용 방안과 관련해 GC녹십자 관계자는 "현재 질병청과 협의 중으로, 세부 사항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답변했다.
BCG 백신 국내 허가 실패에도 녹십자는 새로운 모달리티 확보에 나서며 백신 개발 사업을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17일 녹십자는 질병청이 국산 mRNA 백신 플랫폼 확보를 위해 추진하는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번 사업은 팬데믹에 대비해 안정적으로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mRNA 백신 플랫폼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mRNA 백신의 비임상 단계부터 품목허가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것으로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총 5052억원이 투입된다.
올해는 본 사업의 첫 진입 단계로 질병청에서 선정된 기업들의 비임상 연구를 지원할 예정이다. 녹십자는 올해 동물 비임상 시험 결과 확보와 임상 1상에 대한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녹십자는 지난 2019년부터 mRNA 및 지질나노입자(LNP, Lipid Nanoparticle) 전담 연구팀을 신설해 관련 연구를 지속했다. 연구팀은 현재 mRNA 플랫폼 및 LNP 등 자체 핵심 기술을 구축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안전성 및 면역원성이 우수한 코로나19 mRNA 백신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mRNA 생산설비 준비도 마친 상태다. 녹십자는 지난 2023년 백신 공장이 위치한 전라남도 화순에 mRNA-LNP 제조소를 구축해 전 공정을 모두 자체 기술로 개발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GC녹십자 관계자는 "그동안 많은 백신 국산화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mRNA 백신 개발을 본격화하려 한다"며 "검증된 자사의 백신 플랫폼 기술을 토대로 국내 차세대 mRNA 백신 연구를 위한 가능성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연간 영업이익이 줄었던 GC녹십자는 올해 1분기 백신 수출 증가에 힘입어 실적 개선을 나타낼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선 DB증권 연구원은 "올해부터 본격 반영되는 연결 자회사 ABO홀딩스의 실적 인식(약 36억원 손실추정)에도 흑자전환한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유전자재조합 탄저백신(베리트락스주) 승인에 따른 국내 매출 증가, 수두백신 배리셀라 수출 시작 등으로 별도기준 수익성은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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