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업권법의 부재로 규제책이 전무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자금세탁방지 기술을 이렇게 잘하는 나라도 드뭅니다."
최근 만난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업계 실무자의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가상자산하면 '어둠의 자본시장'을 떠올리곤 하지만, 실무 레벨에서 느끼는 체감은 사뭇 다르다. 실제로 한국은 100만원 이상 가상자산 이전 시 적용되는 트래블룰을 사실상 정착시킨 몇 안 되는 국가다. 금융위원회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적용범위를 100만원 미만 소액거래까지 넓히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 몇 년간 규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엑소더스'가 이어졌지만, 그 와중에도 생태계의 뼈대는 남았다. 원화 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사업자들은 글로벌 톱티어와 비교해도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블록체인 인프라, 보안, 회계 솔루션 등 각 영역에서 전문성을 축적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겉으로는 위축돼 보일지 몰라도, 속은 단단해진 셈이다.
이제 이 '철없던' 산업도 자본시장 질서 안에 편입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신호탄이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승인한 미래에셋컨설팅과 코빗의 결합이다.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제도권 내에서의 확장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남은 퍼즐은 더 크다. 시장에서는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결합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실화될 경우 단순한 지분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내 1위 플랫폼과 최대 가상자산 사업자의 결합은 이용자 기반, 데이터, 결제·콘텐츠 생태계까지 아우르는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국형 디지털자산 플랫폼'의 글로벌 수출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관건은 해외다. 미국과 유럽처럼 규제가 정교하게 구축된 시장을 제외하면, 여전히 규제 차익이 존재하는 지역이 적지 않다. 동남아를 비롯한 신흥 시장은 초기 진입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이미 기술과 운영 경험을 축적한 국내 기업 입장에선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다. 다만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장이 열리기 전 선점하지 못하면, 경쟁력은 빠르게 희석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원책이 아니다. 산업이 스스로 경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촘촘한 내부 통제와 글로벌 수준의 기술 역량을 갖춘 국내 사업자들이 더 이상 내수에만 머물지 않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통로는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원래 먹거리에 쓰이지만, 이제는 산업에도 통하는 말일지 모른다. 이미 잘 만들어진 토양 위에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이 수출 역군이 될 수 있도록 이제 그 뿌리를 바깥으로 뻗을 수 있게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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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한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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