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행 영화를 분석하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배우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명확하게 갈린다. 2008년 ‘추격자’를 시작으로 ‘국가대표’(2009) ‘황해’(2010) ‘러브픽션’ ‘의뢰인’ ‘범죄와의 전쟁’(2011) ‘577 프로젝트’(2012) 등이 극장가를 점령했다. 어느덧 충무로 최고 흥행 ‘블루칩’을 넘어 확실한 보증수표로 ‘하정우’란 이름이 떠올랐다. 2013년은 130억 대작 ‘베를린’이 하정우의 손에 다시 폭발했다. ‘충무로 액션키드’ 류승완 감독 연출,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등 라인업이 막강하다. 첩보액션이란 장르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18일 누적 관객수 598만 명(영진위 기준)을 동원중인 ‘베를린’의 진짜 힘은 단순하게도 하정우의 출연이 가장 크다.
최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기록적인 흥행 성적에 대해 “대체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반문할 정도로 의아해 했다. 그를 가리켜 ‘대세’라고 부르는 현상이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대세’란 단어에는 양 손을 오글거리며 손사래다.
하정우는 “내가 무슨 ‘대세’냐. 자꾸 언론에서 그런 말을 써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룬 결과도 아니고. 그런 말은 함께 영화를 한 수십명의 동료들에겐 상처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하정우도 영화에 대한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했단다. 130억원의 총 제작비와 유럽 로케이션, 장르적 쾌감, 여기에 류승완 감독과 한석규 전지현 류승범으로 이어지는 특급 라인업은 누구라도 그런 예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와이드 릴리즈 방식 개봉으로 관객과의 접점도 크지 않았냐고 분석했다.
그는 얼마 전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을 소개했다. 영화 속 디테일까지 잡아낸 관객들의 눈썰미에 혀를 내둘렀다고. 하정우는 “연기를 하다 보면 감독 또는 상대역과 약속을 한 정말 우리만 알 수 있는 세밀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 내 분석한 리뷰가 인터넷에 넘쳐 나더라”면서 “국내 관객들의 시각이 엄청나단 걸 다시금 알았다. 정말 열심히 해야 살아남겠더라”며 웃었다.
하정우의 입에서 나온 ‘열심’이란 단어는 이미 그의 몸에 밴 습관이다. ‘추격자’부터 지금의 ‘베를린’까지 하정우는 정말 온 몸으로 연기를 했다. 특히 이번 ‘베를린’에선 죽을 고생을 다했다. 맡은 역 자체가 ‘고스트’로 불리는 북한군 특수요원이다 보니 각종 무술을 촬영 수개월 전부터 익혔다. 배우들에겐 ‘악마’로 통하는 정두홍 무술감독과의 준비 기간은 단내의 연속이었다고. 하지만 악바리 근성 하나로 ‘베를린’의 ‘표종성’을 만들어 냈다. 그의 악바리 일화를 보자. 폭발 장면을 찍던 중 사고가 나서 하정우가 손을 크게 다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손이 걸레가 됐다고. 하지만 화 한 번 안내고 끝까지 촬영을 끝마쳤단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하정우는 “영화는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나 하나로 전체에 피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면서 “어떤 배우라도 촬영 중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다. 그런 것 하나하나를 따지다 보면 영화 완성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까지 화를 내면 어떻게 하겠냐”고 말했다.
‘악바리’ 근성만으로 하정우에 대한 설명은 불가능하다. 배역 몰입도에서도 그는 동년배 배우 가운데 특출함을 자랑한다. 이번 ‘베를린’ 촬영에선 아예 군인이 되기로 작정했었다고. 영화 속 그가 맡은 ‘표종성’이 군인이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단다.
그는 “표종성은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지만 의외로 단순한 감정의 소유자다”면서 “오로지 당과 국가에만 충성하는 인물이다. 다른 감정을 갖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해외 로케이션 두 달 동안 철저히 군인의 생활 스케줄을 지켰다. 아침에 촬영장으로 출근 뒤 저녁때 숙소로 퇴근해 밤 9시에 취침에 들어가는. 나름의 규칙성을 찾으며 그 안에서 ‘표종성’을 찾으려 애썼다. 그의 노력에 류승완 감독도 흔쾌히 동의해 촬영 일정 자체를 조정했다고.
그럼에도 아쉬움은 좀 있다. 이른바 ‘먹방’(먹는 장면)에 대한 편집이다. 개봉 후 제작사를 통해 공개되기도 한 ‘베를린’ 속 ‘먹방’은 두고두고 화제를 모았다. 이미 ‘하정우 먹방’은 그가 출연한 영화의 흥행 코드로 자리 잡았다.
하정우는 “그걸(먹방) 그렇게 영화 팬들이 기다려 줄 것이라고는 몰랐다”면서 “‘베를린’에선 바게트 빵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리 스파이라도 잼 정도는 발라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감독께 따졌다(웃음). 나름 최대한 깨작거리며 잼을 발라 먹는데 류 감독이 ‘어쩜 이렇게 맛있게 먹냐. 이건 절대 못쓰겠다’며 편집을 하더라”고 웃었다.
원체 식성이 좋은 하정우이기에 먹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특히 오랜 자취 생활 동안 몸에 벤 음식 솜씨가 남다르다. 특히 이번 ‘베를린’ 해외 로케이션에선 식당 사장님이 됐었단다.
그는 “나와 한석규 선배는 전기밥솥에 각종 밑반찬까지 준비해서 갔다. 그게 다 노하우였다”면서 “승범이가 나를 보고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놀리더라. 하지만 촬영 일정 중간이 넘어가자 숙소에 도착하면 ‘하 사장님 밥 한 술 뜨러가도 되겠냐’며 내게 매달렸다”며 웃었다.
오랜 촬영 기간에 따른 고생이 고스란히 흥행 성적으로 돌아와 더 없이 홀가분한 하정우였다. 조금 쉴 법도 하지만 곧바로 촬영이 연이어 대기 중이다. ‘더 테러 라이브’와 ‘군도’ 그리고 감독 데뷔작인 ‘롤러코스터’까지 올해 스케줄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배우로서 이미지 소비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하정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배우가 자신을 아껴서 무엇을 얻을까란 생각을 나도 해봤다. 아직까지 정확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매번 새로운 것에 부딪치며 도전한다면 그건 소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느낌. 내겐 아직 그게 더 큰 것 같다”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배우 하정우와의 인터뷰, 그를 ‘대세’로 규정하는 언론과 팬들의 시선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 시간이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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