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이 감독을 만났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패셔너블한 영화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택인 홍은동에서 인터뷰 장소인 삼청동까지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왔단다. 멋드러진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그는 “젊게 살아야 돼 젊게”라며 껄껄거리고 웃었다.
첫 질문을 다시 했다. 왜 소원이었나. 이 감독은 수십 번, 아니 수백번도 더 들었던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매번 대답을 할 때마다 기분은 다르단다. 잠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 감독은 “내가 질문을 해 보겠다. 이런 얘기를 그냥 덮어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라면서 “아마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난 질문을 하고 싶었다. ‘과연 그냥 두는 게 맞는 것인가’라고”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 ‘소원’에는 어떤 특정한 묘사도 없다. 우려한 아동 성폭행 장면도 가해자에 대한 단죄도 말이다. 단지 관객들에게 ‘소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주인공 ‘소원’이의 진짜 소원이 무엇일까라고.
그는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이미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럼 진짜 핵심인 피해자는? 그들은? 그냥 당신들이 잘못한 것이니 그렇게 살아라? 왜 그런 상황 속에 있었나? 이게 바로 진짜 폭력이다. ‘소원’은 피해자 가족들의 진짜 소원이 무엇일까를 묻는다. 가해자의 단죄? 아니다. 바로 일상으로의 복귀다. 그것보다 더한 소원이 있을까”라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다.
이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소원’이는 외친다. ‘그냥 우산을 씌어 준 것 뿐인데 왜 내게 잘했다는 사람이 없나’라고. 결국 ‘소원’은 사건의 민감한 외피가 아닌 진짜 속을 들여다 보고 무엇이 진짜인지를 묻는 영화라고 이 감독은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이 영화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굳이 왜 들춰내는가’라고. 이 감독은 잠시 고심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기 쉽지는 않다’ 면서.
그는 “시사회 날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분들이 박수를 쳐주시더라. 고마웠다”면서 “그런데 한 분이 내게 오셔서 엽서를 하나 주고 가셨다. 여자 분이었는데 손글씨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당사자는 엽서에서 자신을 실제 성폭행 피해자라고 소개했다는 것.
이 감독은 “아직도 그분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너무도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하고 갔다. 내 영화에서 그분이 힐링을 받았을까. 아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 역시 아픔이 있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찾은 것이고, ‘소원’ 역시 그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온 것이라 생각한다”고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개봉 전 시사회가 열릴 때마다 이 감독은 매번 현장에 참석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진짜 아픔이 무엇인지를 짚어 준 ‘소원’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더했다. “어느 순간 내가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님이 된 느낌도 받았다”면서 “솔직히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정말 힘들었다. 그 분들의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 분들이 웃으며 가는 모습이 ‘내가 틀리지는 않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이 감독은 언론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 간담회 그리고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원’의 흥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불손한 태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아동 성폭행 피해 소재를 다룬 영화이기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불손하다? 맞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내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가 있다”면서 “1000만 영화도 찍어 봤다. 영화 한 두 편 만들어 본 것도 아니다. 상업 영화 은퇴 선언도 해봤다. 그런데 복귀작으로 ‘소원’을 택했다. 왜? ‘소원’이 말하는 진짜 ‘소원’에 대한 간절함이 아마도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흥행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주인공 아역 배우 이레에 대한 칭찬을 부탁했다. ‘소원’을 통해 첫 데뷔한 아역이다. ‘소원’에서 힘들었던 장면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 감독은 “‘아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란 말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배웠다. ‘그냥 연기잖아요’라며 천연덕스럽게 하는 모습에 정말 대성할 배우란 생각을 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이 감독은 “OST를 부른 윤도현이 단 20분 만에 주제곡을 작사 작곡할 정도로 많은 분들에게 좋은 느낌을 전달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면서 “꼭 온 가족이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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