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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조력자, 현대家의 여성들

[재벌家 여성들③]조용한 조력자, 현대家의 여성들

등록 2014.10.07 15:29

수정 2014.10.29 08:49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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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여성 영향력 다른 기업보다 적어여성 외부활동 반대한 보수적 가풍 탓현정은·정지이 모녀 그나마 가장 눈길

하동 정씨 문헌공파 인사들이 중심인 범 현대가(家)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벌가 집안 중 하나다. 현대가의 인물들은 재계는 물론 정치계와 체육계, 문화계 등 다양한 계층으로 진출해 있어 이들의 목소리는 전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현대가 내에서 ‘사회적 반향’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성들에게 해당된 이야기다. 현대가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가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적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보수적 가풍의 영향이고 둘째는 워낙 딸이 귀한 집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가 1~3세대 일원(현대산업개발, KCC, 성우, 한라 등 형제그룹 포함) 중 하동 정씨 성을 지닌 오너 일가 여성은 단 16명에 불과하다. 42명에 달하는 남성 식구의 절반도 안 된다.

범 현대가 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성 경영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진=현대그룹 제공범 현대가 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성 경영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진=현대그룹 제공


◇보수적 가풍···무조건 아들이 먼저 = 오늘날 ‘현대’ 브랜드를 있게 한 고 아산 정주영 창업주는 가부장 문화를 매우 중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산은 종교를 따로 믿지 않았지만 유교적인 가정 질서만큼은 입이 닳도록 강조해왔다.

생전의 아산은 매일 새벽 5시 아들과 부인, 손주들을 청운동 자택으로 모두 불러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근검과 인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아산의 가부장적 원칙 탓에 며느리는 따로 밥상을 차려야 했다.

아산은 며느리들의 대외활동도 엄격히 제한했다. 계열사의 지분을 갖는 것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혼 전 명문대 출신의 재원으로 칭송받았다 하더라도 현대가에 시집을 온 순간부터는 조용한 주부의 삶을 살아야 했다. 아산이 여성들의 대외활동을 제한한 것은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외부 활동보다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산의 원칙은 현실로 나타났다. 아산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2007년 별세)는 60여년간 현대가의 대모로 살면서 조용한 내조에만 충실하며 일생을 살았다. 아산의 하나뿐인 여동생인 정희영 여사도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 뒷바라지에 일생을 바쳤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부인인 고 이정화 여사(2009년 별세)도 한때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의 대표를 맡았지만 줄곧 현대가의 맏며느리로서 집안 대소사 챙기기를 자신의 최우선 업무로 생각했다.

현대가 며느리 중에서는 유명인이 많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의 부인 김영명 씨와 KBS 아나운서 출신인 노현정 씨(정대선 현대BS&C 사장 부인)가 대표적인데 이들 모두 결혼 전 유능한 재원으로 분류됐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내조에만 충실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세 딸(정성이 이노션 고문·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도 각자 그룹 계열사 내에서 직함을 갖고 있지만 이들의 실질적 영향력은 적다. 나머지 딸들은 어머니 이정화 여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제1본업은 남편 내조다.

조용한 조력자, 현대家의 여성들 기사의 사진


그나마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남동생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함께 이노션의 최대주주(지분율 40%)로 있으면서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광고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 가장 돋보인다.

정 고문은 차분하고 조용한 어머니의 성격과 현장을 꼼꼼히 챙기는 아버지의 성격을 고루 닮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 고문의 이러한 활약 덕에 이노션은 삼성그룹 계열의 광고회사인 제일기획과 더불어 국내 광고업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정은·정지이 모녀 단연 돋보여 = 좀처럼 활발한 활동상을 보기 어려운 현대가의 여성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다.

현정은 회장은 2003년 8월 남편 고 정몽헌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전업주부에서 경영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고 조수호 전 회장의 타계 이후 한진해운의 경영을 맡았던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현 회장은 잇단 그룹의 계열 분리 이후 소그룹으로 변화한 현대그룹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왔다. 비록 해운업황의 부진으로 그룹 안팎에서 잠재적인 유동성 위기 문제가 도래했지만 선제적인 대응으로 시장의 우려를 매우 빠르게 불식시켰다.

장녀 정지이 전무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학위를 딴 뒤 외국계 광고회사에 근무하던 중 지난 2004년 현대상선에 경력직 사원으로 입사해 2006년 전무로 승진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 전무가 대대로 내려온 현대 가문의 전통적 기질에 어머니 현 회장의 꼼꼼한 성미를 닮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정 전무의 동생인 차녀 정영이 대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와튼스쿨을 졸업해 지난 2012년 6월 언니 정지이 전무가 일하는 현대유엔아이로 입사했다. 현재는 현대상선에서 재무·회계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현 회장은 최근 두 딸인 정지이 전무, 정영이 현대상선 대리와 함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작업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현 회장 모녀는 최근 현대로지스틱스 지분을 일본 오릭스에 매각하면서 받은 자금의 일부(약 400억원)로 현대글로벌 주식을 매입했다.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회사인 현대글로벌은 현 회장 모녀의 주식 매입으로 오너 일가 지분율 100%의 계열사가 됐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 지배구조는 ‘현정은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으로 바뀌었고 현대글로벌은 그룹의 지주회사가 됐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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