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업 영화의 미덕은 관객 동원?
올해 최고 극장가 성수기 시즌은 ‘명량’이 개봉한 8월이었다. 누적 관객 수 1761만을 동원한 ‘명량’은 개봉 이후 매 순간이 기록이었다. 지난 8월 10일 박스오피스 순위(영진위 기준)의 경우 ‘명량’이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10위까지의 관객 동원을 합하면 무려 일일 누적 관객 수가 400만을 넘어섰다.
이후 3개월이 지난 11월 5일 기준이다. 국내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를 보면 1위 ‘나를 찾아줘’가 5만 2명을 동원했다. 2위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2만 825명. 10위까지의 관객 동원을 모두 더해도 10만 명 수준이었다. 여름 시장 극성수기, ‘명량’의 기록적인 흥행 시기임을 감안하더라고 3개월 만에 시장 규모가 무려 40분의 1로 줄어들은 셈이다.
‘인터스텔라’는 하루 뒤인 6일 오프닝 스코어 22만으로 데뷔했다. ‘TOP 10’ 누적 관객 수의 두 배가 넘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당시 뉴스웨이와 통화한 한 제작사 대표는 “차라리 ‘인터스텔라’가 극장가를 휩쓸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관객 자체가 들지 않는 시장 상황 속에서 확실한 ‘텐트폴 영화’(흥행이 보장된 작품)의 등장을 바란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듯 ‘인터스텔라’ 이후 극장가는 활황세로 접어들었다. 관객들은 극장가로 쏟아졌다. 일일 관객 수 3만을 넘기기 힘들던 한국영화 관객 동원력도 힘을 받았다. 하지만 부작용은 분명했다. 극심한 쏠림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한때 무려 80%가 넘는 예비 관객이 ‘인터스텔라’에 몰려들었다. ‘리딩 영화’의 등장은 반가웠다. 하지만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 이런 구도는 영화계의 표면적인 문제점만 해결한 채 더욱 극심한 부작용을 만들어 냈다.
올 여름 시장 한국영화 ‘빅4’(군도, 명량, 해적, 해무)가 끌어 모은 관객 수만 무려 3244만에 달한다. 상생의 관객 동원력을 보여 준 가장 좋은 선례다. 이 시기 작은 영화들이 소리 없는 패배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제시했단 점에선 분명 선례다. 여러 조건이 있었겠지만 ‘인터스텔라’가 보여 준 흥행 독주는 비수기 혹은 성수기 시즌 구분 없이 ‘양날의 칼’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다양성 영화의 흥행은 어떤 의미일까
제작비 1억 2000만원이 들었다. 이 금액은 사실 대규모 상업영화의 ‘장비 렌탈료’ 조차 안 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 돈은 현재 240억 원이 넘는 누적 매출액으로 돌아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지금의 흥행이 마침표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란 점이다. 다양성 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워낭소리’가 제작비 1억 원으로 누적 매출액 190억(누적 관객 수 292만)을 올린 기록을 넘어섰다. 다양성 영화 특히 ‘님아···’의 경우 76년을 해로 한 노부부의 삶을 조명한 스토리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관점, 반대로 다양성 영화계에선 금기시되고 있는 수익금에 대한 관례를 뒤로 하고 서라도 관객 쏠림 현상에 대한 궁금증은 높아지고 있다.
독립영화 혹은 다양성 영화는 자본에 귀속되지 않고 감독의 관점에서 풀어낸 자유로운 얘기가 특징이다. 때문에 상업적인 개념에선 다소 벗어난 스토리가 많다. ‘님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말 극장가에서 ‘님아···’는 핵폭탄급 신드롬을 터트렸다.
더욱 놀라운 점은 20대 젊은 관객층의 쏠림 현상이다. 실버 무비로 인식된 ‘님아···’가 이처럼 젊은 세대에게 데이트 무비로 각광 받고 있는 기현상은 텍스트로 풀어내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굳이 풀어내자면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스토리의 진정성, 순수함 그리고 다양성영화 가운데서도 한 장르로 풀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여과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었다. 더욱이 제작진조차 날벼락으로 느낀 촬영 도중 주인공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은 ‘님아···’의 극적 장치로 작용됐다.
바라보는 시각 속에서 벌어지는 즉흥적인 현상이 ‘님아···’ 진정성과 사실성에 더욱 힘을 보탠 것이다. 그 어떤 상업 영화의 팩션보다 흥미로움을 전했다. 물론 ‘인스턴트’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가 사실은 순수한 아날로그에 더욱 관심을 쏟고 있다는 반증을 나타내기도 하는 현상이 이번 ‘님아···’의 흥행이다.
◆ 두 영화의 흥행 포인트, 앞으로 충무로가 건져야 할 핵심은?
사실 ‘인터스텔라’ 흥행은 영화적 스토리의 장대함과 과학적 사실감 그리고 시각적 만족도 등 다양한 코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 꼽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인기 감독의 브랜드가 가장 켰다.
데뷔작 ‘메멘토’부터 시작된 독특한 그의 세계관 여기에 디지털을 배제하고 필름에 집착하는 영상미, 아이맥스 집착증 등은 관객들이 영화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이끌어 올린 ‘다크 나이트’ 시리즈는 코믹스 원작을 현실로 끌어낸 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영화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을 허무는 작업에서 놀란 감독은 독보적이었다. 그의 이런 능력은 ‘인셉션’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 ‘인터스텔라’ 역시 연장선이다.
충무로에는 놀란 감독이 없을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다’ 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스토리와 철학을 이끌어 가는 감독이 손에 꼽을 정도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감독을 꼽자면 한 손으로 셀 정도다. 이 점은 역량 높은 감독의 부족이라기 보단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얘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불가능한 국내 시장 상황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일부 영화계 관계자들은 ‘인터스텔라’를 자본의 성공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엄청난 물량을 투입한 작품에 대해 대중들의 기대치가 반영된 결과란 점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수백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있어왔다. 물론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한 영화 수입사 관계자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보면 데뷔작 ‘메멘토’부터 지금의 ‘인터스텔라’까지 하나로 관통되는 정서가 있다”면서 “새로움 혹은 변신과 도전을 추구하는 국내 영화계 현실과는 어쩌면 완벽하게 반대되는 행보다. 하지만 이런 점이 자기 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스토리의 상실성을 찾아볼 수 있나. 결과적으로 비주얼도 큰 요소지만 흥행의 끝은 스토리의 완성이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스토리의 완성은 ‘님아···’의 극적 요소에서 찾아보면 묘한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제작진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할아버지의 죽음을 꼽았다. 연출을 맡은 진모영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떤 분들은 그 장면이 드라마적 요소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분들도 있었다”면서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그 부분을 통해 얘기 자체의 무게감이 더해졌다. 부부는 인위적으로 헤어지지 않으면 결국 사별을 하게 되는데 결국 모든 사람들이 맞이하게 되는 이별의 얘기로까지 귀결되게 됐다”고 전했다.
진 감독의 말은 결국 스토리의 의외성이 가진 진정성이란 점이다. 연출자 본인도 뜻하지 않은 점이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게 됐고, 그 힘은 흥행이란 보답으로 돌아왔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도 장르적 충실도 혹은 진정성에 무게를 둔 작품이 많았다. 이는 올해만의 흥행 코드는 아니다. 하지만 특히나 다양성 영화의 흥행세가 강했던 올해 영화계를 되돌아보면 두드러진 대목이다.
다시 돌아오면 ‘인터스텔라’ 역시 스크린 독과점이 만들어 낸 ‘흥행 몬스터’는 아니란 점이다. SF란 장르가 만들어 낸 공상 과학 비주얼은 뒤로하고서라도 놀란 감독 특유의 무게감 있는 스토리의 전개 방식은 국내에 마니아층을 만들면서 골수 놀란 팬들을 양산해 냈다. 사실 놀란 감독은 데뷔작 ‘메멘토’부터 ‘인썸니아’ 등 다양성 영화의 코드를 살린 스토리 전개, 여기에 ‘다크 나이트’ 시리즈, ‘인셉션’ ‘인터스텔라’로 이어진 철학적인 스토리 접근법이 두드러진 감독이었다. 단순하게 자본과 할리우드의 규모가 만들어 낸 스타 감독이 아니란 점이다.
‘인터스텔라’에 극찬을 쏟아낸 한 영화 관계자의 말이다. “영화적 동지에 대한 동질감과 함께 자괴감이 들게 할 정도로 놀란 감독의 스타일은 확고하다”면서 “저런 감독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할리우드의 시스템이 부러울 정도다”고 말했다. 이어 ‘님아···’의 흥행에 대해서도 “어느 누가 (흥행) 예상을 했겠나. 하지만 이를 알아 본 관객들의 눈이 영화 관계자들의 선택을 질타하는 순간이기도 했다”면서 “이 역시 자괴감이 들 정도다”고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수천억을 쏟아 부은 세계적인 화제작 ‘인터스텔라’와 단 1억 원이 투입된 ‘님아···’가 선보인 2014년 영화계 쌍끌이 흥행이 시사하는 의미는 분명히 강렬하다. 국내에서도 ‘인터스텔라’가 그리고 제2, 제3의 ‘님아···’를 준비해야 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준비돼야 하는지를 짚어봐야 할 것 같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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